[기자수첩] 연금TF에서 종신보험이 나온 까닭
[기자수첩] 연금TF에서 종신보험이 나온 까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지난 4월 금융위원회와 5개의 생명보험사들로 구성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TFT'가 만든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상품은 사후 지급되는 사망보험금을 연금, 의료, 간병, 교육비로 생전에 일부 전환해 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상품의 선구자격인 A보험사의 지난 6월까지 판매실적은 1만5165건으로, 가입금액(주계약)은 무려 1조500억원을 돌파했다. 몇일 먼저 선지급형 종신보험을 출시해 '초대박'을 터트린 B보험사는 실적 공개가 어렵다면서도 기존 종신보험 대비 판매 수치가 3배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무배당 U-Choice 종신보험', '변액 종신보험Ⅱ 인생은 교향악입니다' 등 사적연금 활성화 TFT에 참여하지 않았던 보험사들도 앞 다퉈 비슷한 상품들을 속속 출시했다.

하지만 선지급형 종신보험에 대한 '획기적'이라는 평가 이면에 또다른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겠다고 만든 TF에서 왜 하필 '종신보험'이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말 그대로 종신보험은 사망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의 보장성 보험이며, 연금보험은 장수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험이다. 언뜻 보면 사망 보험금을 미리 당겨쓸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연금보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보장성인 종신보험과 저축성인 연금보험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우선 보험사가 가져갈 수 있는 수익차다. 보장성보험의 구체적인 사업비 내역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험료의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저축성보험의 경우 10%가 안된다. 보험사의 수익구조가 사업비 차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장성보험을 많이 팔수록 보험사에게 유리한 구조다. 반대로 보험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을 경우, 보험가입자에게는 불리하다.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높은 시책(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에 대한 시상 제도)이 지급되다보니 설계사들로서는 판매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GA·전속설계사에 지급되는 수수료는 보험상품 중에서도 종신보험이 가장 높다. 신상품과 주력상품이라면 프로모션 성격의 추가 지원금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다. 통상 가계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깨는 금융상품은 보험이다.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85회차(7년차) 보험계약 유지률은 40%를 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10명 중 6명이 보험을 7년 동안 유지하지 못하고 중도에 해약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중도 해약시 이제까지 낸 보험료를 손해보지 않고 돌려받을 수 있는 적정 유지기간은 얼마정도 일까? 종신보험 20년, 연금보험 7년이다.

다시 말해 종신보험의 경우 애초부터 연금 형태를 갖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중도해약의 피해는 이미 받은 수입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수수료를 뗀 보험사가 아니라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금융당국과 보험사들도 할 말은 있다. 연금보험의 경우 나올 수 있는 형태는 다 나왔고, 설령 새로운 연금보험을 출시한다고 해도 선지급 수수료가 없는 후취형태의 연금보험은 보험사들로서는 관심 밖이다. 설계사들 역시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없다.

물론 현재로서는 선지급형 종신보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가봐도 가입자에게 불리한 구조의 상품은 보험사 배불리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난해 종신보험의 불완전판매 민원이 생명보험상품 전체 민원의 30%에 육박했다는 사실을 금융당국과 보험사들이 모를리 없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