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양치기 소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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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사회의 양 끝에서는 웬만해선 갈피를 잡기 힘들만큼 저마다의 목청껏 다른 소리들을 질러댄다. 모두가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는 데 똑같은 사안을 두고 영 다른 해석에 제각각의 주장들이 터져 나오니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 사안은 물론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도 해석은 극단적으로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제지표 하나를 놓고도 해석의 폭이 워낙 커서 지표 해석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실감하게도 만든다.

내부에서의 소동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이제는 IMF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훈수도 보태져 어지러울 지경이다. IMF라면 우리 국민은 일단 경기(驚氣)부터 하고 본다. 외환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았던 때로부터 아직 10년도 안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IMF가 무오류의 신앙대상도 아니건만 IMF의 한마디 경고만 나오면 금과옥조처럼 모시는 이들이 있어서 사회적 소음을 증폭시킨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지식계급들이 몇백 년 전부터 보여 온 행태여서 결코 새삼스럽지는 않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지만 대체로 근세조선 건국 이후, 특히 세조의 집권 이후로 우리의 지배계급들은 사대 의식에 흠뻑 젖어들어 우리의 국가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무능력 집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꾸준히 보였다. 구한말의 지배집단이 보인 행태에 한숨을 짓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의 소위 여론주도 층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해 볼 일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어디 강대국에 의지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지금도 우리 사회의 소위 주류세력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고 있다.

요즘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비교적 자주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퇴역 장교 한 사람은 “작전통제권 환수는 진작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좌파 정권이 하려고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게 지금의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보는 보수우익들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일게다.

반미=좌파=친북=용공의 단순 도식은 이승만 정권 성립을 위한 구호로부터 시작됐으니 벌써 60년이나 됐다. 전세계적 영향을 미친 사회주의의 붕괴가 국가성립 60년 만에 일어났던 점을 미루어 봐도 이런 단순 도식이 이 사회를 계속 지배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우리 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군이 갖게 하는 일이 ‘반미’이고 ‘좌파’라 한다. 하긴 전세계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우측에 우르르 몰려 있는 한국사회에서 나보다 왼편이니 좌파라며 싸우는 꼴도 꽤 우스운 풍경이다.

어찌됐든 56년 전 민족내전에 우리 편을 들기 위해 들어왔던 미군의 참전이 오늘날까지 한국 군대에 대한 미군의 지휘통제를 당연시할 명분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낮다. 그런데 아직도 ‘은혜’를 말하는 세력들을 보면 자연스레 임진왜란 후 명나라의 ‘은혜’를 내세우다 병자호란을 초래했던 조선 지배층을 떠올리게 된다.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이들이 내거는 현실적 명분 중에는 북한이 발사 시도한 미사일과 실체를 그 누구도 확인한 바는 없는 핵폭탄이 들어있다. 북한 스스로도 주장하니 그런가보다 싶지만 발사실험도 없었던 핵폭탄이라면 호들갑 떨며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또 우리가 그 이상 무장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작전통제권 환수가 안 된다는 이들, 솔직히 지금 미국의 견제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 수준의 무장도 못할 수준인가 물을 일이다. 지금 우리의 국방예산 규모만 봐도 북한이 우리보다 강력한 무장을 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2002년 서해교전 당시 국군 장병 사상자들이 많이 나와 우리를 긴장시켰지만 동시에 북한 해군의 무장 수준이 얼마나 뒤처진 것인지도 확인했다. 이미 북한이 시위용 미사일 개발은 수준이 높은지 모르나 전반적인 무장 수준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간 우발적 교전사태가 본격적인 무력충돌로 확전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정부 노력이 못마땅한 이들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 군을 영원한 인큐베이터 베이비로 여길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의 일을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꾸 ‘넌 아직 약해’라고 세뇌하지 말자. 교육으로도 그건 빵점짜리 교육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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