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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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는 근래 들어 인사 청문회가 가장 시끄러운 정치 쟁점으로 등장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 산하 기관 곳곳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는 노조 시위가 잇달았다. 금융기관 가운데도 그런 잡음이 일어난 곳들이 있듯 사회 구석구석에서 인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점점 더 표면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아마추어 정부라고 폄하되는 현 정부 인사는 그렇다치고 ‘인사가 만사’라던 한 전직 대통령 역시 인사 문제로 몇 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세상 경영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 경영이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실상 개혁적 정부가 들어서면 당연히 각 공적 조직의 개혁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또 그러라고 뽑아놓은 정부이니 그래야 마땅하다. 그리고 조직 쇄신을 하자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최상이겠다. 그 밥에 그 나물로 변화를 불러오기는 힘들 터이니.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그래서 말썽이 끊이지를 않는다.
혁명적으로 한꺼번에 다 바꾸면 깔끔하게 변화가 올까 싶지만 그래서는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질 못한다. 그렇다고 핵심적인 일부만 바꾸자고 들면 이미 둥지 틀고 있는 기존 세력들이 얌전히 받아들여주질 않는다. 소수일 땐 왕따를 시키거나 오염시켜 버린다.

오래전 정권에서 전직 장관을 지낸 한 분이 훗날 자기 보좌관에게 털어놨다는 얘기다. “내 딴에는 소신껏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 데 그 자리를 물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 조직에서 오래 묵은 공무원들 손 위에서 놀다 내려온 꼴이더라”. 자신이 지시하고 지휘했다고 생각했는 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들은 부처님 손바닥이고 자신은 그 위에서 노는 한 마리 원숭이였다는 자괴감이 들더라는 얘기다.

조직의 여러 구습에 물들지 않으면 장관이라도 왕따 당하는 이런 모양새가 그 전직 장관 한사람의 문제만도 아닐 터이다. 지역 기관장 급의 한 고위 공무원 출신 인사 역시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대개 하위직 공무원들은 지역에 붙박이로 근무하는 데 비해 기관장들은 계속 자리를 옮겨다니기 마련인데 기관장들이 한 자리 짧은 임기동안 조직을 쇄신할래야 할 수도 없고 어설피 손대고 나섰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고위 공무원을 지낸 그 분은 본인이 겪은 인사 실패의 경험을 들려줬다. 하도 부패 문제로 말썽이 많은 부서이길래 한꺼번에 전 부서원을 다른 부서로 발령내고 그야말로 한직으로만 돌던 요령 못 피울만한 직원들을 그 부서로 발령냈더니 오히려 심각한 말썽이 나더라는 것이다. 물 흐르듯 진행돼야 할 일들이 곳곳에서 정체되고 부패 공무원들로 낙인 찍혔던 전임자들 시절보다 민원은 더 폭주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한달만에 원상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일부만 교체하는 방식을 써봤지만 그 자리에 발령받아 가면 몇 달 만에 전임자들과 똑같아 지는 데 일일이 처벌만 한다고 능사도 아니고 결국 사회 전체의 정화 속도에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털어놓는다.

인사가 곧 정치이기도 하지만 근래의 시끄러운 인사 청문회와 상대적으로 조용히 넘어가는 인사 청문회의 차이가 대체로 그 진보성의 정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한 개혁의 속도를 가늠해 볼 수도 있을 성싶다.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공고한 힘에 의한 것이든 다수 대중의 편안한 선택에 의한 것이든 우리 사회는 지금 빠른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30~40년 경제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정치적으로도 어쨌든 합법적 정권을 거푸 탄생시켰고 앞으로도 계속 창출할 토대가 다져진 현 단계에서 한국 사회 전체가 ‘쉬고 싶다’는 집단적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노령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조로현상을 보이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젊은 나라로 거듭난 중국은 물론 일본도 건강관리 잘 한 중년의 모습으로 뛰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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