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유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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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대통령이 국회의 의결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는 없다.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서 웬만하면 행사하지 않을 뿐.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그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에 앞서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 내용을 보자면 대통령의 재량권이 견제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당 내의 비박계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맹비난을 퍼부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그런데 지금 메르스로 전국이 뒤숭숭하고 그런 분위기에 묻혀 한동안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성완종 리스트 건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많고 많은 관련자들 다 빠지고 이제 아무런 힘도 가진 게 없는 노건평씨 한 사람 검찰에 불러들여 장시간 심문함으로써 정치적 칼날을 빼들고 있음은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지만.

메르스사태가 정부의 초기대응 부실로 걷잡을 수없이 커진 이유가 혹 대통령의 권한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보여줬던 두서없는 일처리 방식이 대통령의 힘이 약해서였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국난이 닥칠 때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해낸 주체는 늘 큰 권력을 행사하던 지도층이 아니라 평소에 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고통 받던 민중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란이 됐든 경제적 추락이 됐든 그 어떤 경우에도 결국 민중들의 자발적 참여로 난관을 극복해내지만 그 결실을 따먹는 것은 비겁했던 권력자들이었다.

요즘 어느 채널에선지 유성룡의 ‘징비록’을 제목 그대로 딴 드라마가 꽤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인데 그 이유가 현재를 제대로 투사한 인물들 때문인 듯하다. 시청자들은 전쟁의 와중에서조차 권력을 쥔 양반들은 계급을 무기로 휘두르고 조정은 여전히 제 백성을 믿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며 답답한 현실을 되비쳐보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서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가 온통 권력투쟁 뿐이라면, 그 권력투쟁을 위해 민생이 단지 장식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런 정치를 위해 국민이 비싼 세금을 바쳐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대중의 정치 무관심은 나날이 더 커져가지만 그런 무관심이 더욱 더 정치를 위한 정치만 난무하도록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드라마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우스운 사례를 들어보자. 이번엔 코미디다.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의 ‘민상토론’이라는 한 코너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늑장대응을 풍자했다고 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 코너에 대한 의견제시 결정을 내렸다는 코미디다.

문제는 코미디언들의 그냥 웃자고 하는 코미디와 달리 권력기구의 이런 코미디는 대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뉴스로 불거지고 나서야 인터넷으로 이 프로그램을 본 필자이지만 화면에 보이는 젊은 방청객들 표정을 보면 그저 유쾌하게 웃고 넘어가던데 방통위에서는 보고 불쾌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여기서도 야당 추천 위원들은 그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더 많은 관계로 다수결로 처리됐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일정한 틀 안에서 수렴하자면 다수결이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다. 그래서 모든 대의기구에서 의견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다수결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결이 늘 기득권을 강화시켜주는 방향으로만 결론을 내릴 때 드러난 소수는 물론 드러나지 않은 다수도 거듭되는 손해를 어느 순간엔가 자각하게 될 터이고 그 때가 되면 제아무리 ‘합법’의 틀에 맞춰 내놓은 결론이라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려워진다.

세계 역사의 격변이 늘 ‘합법’하지 않은 권력행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합법’의 탈을 쓴 권력의 자가 증식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역사의 방향을 틀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처럼 정부`여당이 절대 권력을 행사할 만큼 균형이 기울어져 있는 정치 시스템에서는 자칫 대중들의 밑바닥 의견이 무시되기 쉽다. 지금 정부`여당의 권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친다. 압도적인 여당 우위의 의석수를 가진 여당이 정부의 원하는 바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 대통령이 화가 난 모양이지만 여당은 그래도 이제껏은 ‘정치’를 해온 셈이다. 물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여당의 ‘정치’시대도 끝나갈 모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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