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내려라"…대기업 甲질 '성토의 장' 된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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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百 협박에 애널리스트들 잇단 '쓴소리'

[서울파이낸스 김소윤기자] #. 토러스투자증권 소속 애널리스트 ㄱ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현대백화점의 부사장이란 사람에게서 '네가 뭔데 현대백화점에 대한 면세점 선정 채점을 하고 누가 유력하다고 말하냐'는 통화 내용을 게시했다. ㄱ씨는 해당 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에 기반해 애널리스트 자격으로 투자자들이 판단에 참고할 수 있도록 분석한 것이라고 답했으나, 부사장은 현대백화점의 영업에 중대한 지장을 주었다며, 보고서를 홈페이지 등에서 내리고 사과문을 게재하지 않는다면 법적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대기업 경영진이 회사에 불리한 보고서를 낸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보고서를 삭제할 것을 종용했다는 소식이 금융투자업계에 전해지자 '갑질'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상당수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은 "기업과 증권사의 갑을(甲乙) 관계를 드러내는 사례"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토러스투자증권의 유통담당 애널리스트 ㄱ씨는 최근 '유통업! 왜 면세점에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7개 대기업 면세 후보군 중에서 현대DF에 가장 낮은 570점을 줬다.

이와관련 ㄱ씨는 "쇼핑과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미 인근에 롯데면세점 무역센터점과 롯데월드면세점이 위치해 있어 입지 면에선 불리해 보인다"며 "또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쟁사 대비 낮은 점수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현대백화점 부사장은 이날 오전 ㄱ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분석보고서로 인해 현대백화점의 영업에 중대한 지장을 줬기 때문에, 앞으로 2일 내에 보고서를 홈페이지 등에서 내리라"며 또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신문기사를 일일이 제거해야 하며 잘못된 분석이었다는 사과문을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이 같은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부사장은 토러스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장에게도 같은 내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ㄱ씨는 이날 오전 자신의 SNS를 통해 "애널리스트의 분석과 의견은 그 어떤 외압의 영향 없이 작성돼야 한다"며 "해당 보고서는 그 어떠한 이권과 영향력의 개입 없이 이미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애널리스트에 의해 객관적으로 분석된 것이므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자신보다 1주일 먼저 비슷하게 점수를 매겨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의 선정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외국계 CLSA증권 애널리스트에게도 같은 요구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해당 애널리스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간 기업의 갑질을 '풍문' 쯤으로 여기던 투자자들도 "'셀'(매도) 의견이나 기업에 부정적 내용이 나오면 협박한다더니 사실이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날 H증권사의 모 연구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금융당국이 리서치에게 매도보고서 비율을 올리라고 요청하고, 막상 매도 보도서가 쏟아질 때 애널리스트에게 날아올 화살을 어떻게 막아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그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일어났다"며 "애널리스트 개인이 어떻게 법인의 민사 소송을 상대한다는 말인가"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또다른 애널리스트 A씨도 "(자신도) 기업의 매도 보고서뿐만 아니라 사지 말라고 간접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간혹 낸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기업의 협박 등에 시달려야 했다"며 "이는 애널리스트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인데 금융당국이 이 같은 환경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 B씨도 "이처럼 기업의 협박 등 외부의 공격이 있을 경우, 애널리스트 분석의 객관성 유지와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통상 회사나 금융감독원 등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회사는 어떠한 압력에도 보호조치를 전혀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표 강요나 회사 측의 면피 노력만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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