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남이 만들어 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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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더니 이제는 중국의 거듭되는 역사 왜곡이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이제까지 흔히들 당장 코앞에 현안이 쌓였는데 고대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오늘날 왜 중요하냐고 묻곤 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외교 마찰까지 감수하며 고대사를 새로 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속도 없는 짓에 중국 정부는 단지 복고 취미로 고대 역사를 뒤집어엎으려 장기적 청사진을 가지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일까. 또 일본 정부는 단지 지난 역사적 과오를 감추기 위해서만 역사 왜곡에 열을 올릴까.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보다는 훨씬 실리적인 백성들의 나라가 현재의 중국이고 일본인 줄 안다. 우리는 근세조선 5백 년을 공소한 논쟁으로 허비할 동안 중원 대륙을 번갈아 경영한 명이나 청은 뿌리가 영 다른 민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실리를 취했다.

그런 중국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 왜곡을 기획, 실행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미래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결코 과거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 미래를 규정하는 준거가 된다. 그래서 어느 나라고 축소지향적 역사 서술을 하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중국이 동북공정이니 탐원공정이니 하며 80년대부터 준비해 온 역사 왜곡 프로젝트의 결과들이 이제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벌인 1차적 이유는 개방과 더불어 자랄 수 있는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 부활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동안 황제 헌원을 1인 조상으로 하던 중화민족주의를 염제 신농과 치우까지 3인 조상체제로 바꾸며 세력이 큰 소수민족들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중국정부의 그같은 시도가 있기 전에 치우를 시조로 섬겨온 묘족은 현재 전세계 화상들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 묘족은 산동성 황하 하류 지역에 세워졌던 중국 대륙내 최초의 고대국가로 알려진 상나라(일명 은나라, 도읍지인 은에서 유래)의 후예로서 상인이라는 단어가 이 민족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그 유민들에게는 일체 땅을 소유할 수 없도록 철저히 탄압, 유민들이 모두 장사로 생계를 잇게 되면서 상나라 사람, 즉 상인=장사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전세계 화상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 경제를 일으키는 밑거름이 됐다.

지금 중국은 탐원공정을 통해 황토고원을 비롯해 황하강 주변을 열심히 발굴하고 고고학적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지만 섣불리 발표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중원 대륙에서 발굴되는 고대 문명의 흔적들 대다수가 하화족 문명이기 보다는 현재 동북3성에서 발굴되는 동이 문명의 흔적들과 연관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벌어졌던 역사 모두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이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통일된 중국 역사는 실체가 없다. 다만 현재 점유하고 있는 땅 위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를 자국 역사로 해석할 뿐이다. 이런 역사 왜곡이 중국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인디언을 멸절시키다시피 한 현재의 미국 역시 인디언의 역사까지 종종 자국 역사로 삼는다.

넓은 대륙을 만주족이나 여진, 흉노, 몽골, 선비 등 주변의 기마 유목 민족들이 번갈아 들어가 강력하게 경영하지 않으면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심각한 전란을 겪어 온 것이 중국사다.
그 역사를 지금 일관된 국사로 엮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일부 강단사학자들을 중심으로 國史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객관적 역사면 충분하지 국사는 안 된다는 이들이다. 온전한 객관은 존재한다고 믿나보다.

그건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내 의지로 판단하기보다 남들이 만든 학문적 틀에 데이터를 부어 성형만 하려는 노예적 태도로 보인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을 절대 진리가 없고 따라서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문제도 없다. 그런데 우리네 학자들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하나 뿐인 정답이 있는 양 요지부동이다.

마치 식구들이 하는 말은 못 믿으면서 광고 문구 한 구절은 진리인양 믿는 사춘기 청소년 같다. 스스로 답을 구하는 훈련을 너무 못 받은 탓인가 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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