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고려 말 무역선이 말하는 것
<칼럼>고려 말 무역선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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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말, 즉 고려 말의 고려 무역선이 산동반도 북단의 해안에서 발굴 인양됐다고 한다. 실제 발굴된 것은 지난해였다지만 중국측의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돼 국내에 알려지기는 최근 일인 모양이다.
그 선박이 무역을 위해 분주히 오가던 시기는 고려말, 조선이 건국되기 직전의 뒤숭숭한 정국하에 있었을 터이다. 그래도 상해로 무역선은 떴기에 오늘날 비록 뻘밭에 묻힌 채로일망정 산동반도 북단 내항인 펑라이(봉래)시에 위치한 봉래수성 해안에서 그 모습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실상 고려는 무역이 매우 활발한 왕국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근래에는 옛 송나라 지역에서 이슬람교도인 고려인 무덤이 발견됐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고려시대 개성 근방에는 아랍지역 상인들만을 위한 일종의 자유무역지대 비슷한 별도 지역이 존재할 만큼 교역이 활발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고려가요인 ‘쌍화점’의 가사에도 회회아비라는 이름으로 아랍상인이 등장한다. 아랍인들을 회회인, 이슬람교는 회회교란 불렀듯이 아랍 사내를 칭하는 표현이 회회아비였던 것이다.
그런 외향적 문화 덕분에 고려는 그 이름이 중·근동지방까지 알려졌다. 활발한 교역으로 국제관계에서도 독자 연호를 사용하며 당당한 왕국의 위상을 떨쳤다. 물론 고려가 국가적 위상을 떨친 게 교역 뿐만은 아니다. 현재 역사교육은 고려의 강역을 한반도 안으로만 묶어두고 있지만 아직도 만주 지역에는 고려시대 9주6진의 유적들이 일부 남아있다는 것이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서문에 남아있고 최근 연변지역 조선족들을 통해서도 증언되고 있다.
어떻든 고려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었다. 몽골군이 터키 지역까지 유린하고 원나라의 말발굽이 지나가고도 독립국가체제를 유지한 국가가 없던 당시의 국제 정세 속에서 고려는 원나라가 상대한 거의 유일한 외교 대상이었다. 비록 후대로 가면서 부마국으로 원의 조정에서 왕권을 뒤흔들었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마저도 원의 고려 출신 황후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결탁, 그 힘을 이용하려던 고려 조정 내부의 배반이 주된 원인이었다.
어떻든 무신정변을 겪고 원의 침입을 겪어내는 등 정국이 들끓던 시절에도 고려 상인들의 대외 교역은 끊임없이 이어졌던 듯하다. 그리고 오늘날 그 흔적이 교역 상대였던 산동반도 북단의 해안가에서 드러났다.
고려가 그처럼 국제사회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던 데는 왕조 말기 1백년 미만을 제외하면 개국 이후 대외적으로 자주적 왕권을 행사한 고려왕실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와 아울러 끊임없는 대외교류를 통해 결코 고인물처럼 썩지 않을 사회를 유지했던 개방성이 큰 역할을 했다.
이성계의 근세 조선이 대외관계의 기본틀을 사대에 두고 모든 교역을 명나라를 통해 하는 간접교역에 안주한 결과는 민족사 최대의 치욕이라 할 식민지 역사를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다. 이미 사대주의가 5백년간 일반 백성들의 뇌리에까지 세뇌되어 아직도 그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한 채 끊임없이 강대국 의존적 논설들이 횡행하고 있다.
근세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왕권 중심이냐 사대부 중심이냐는 권력구조 문제로 정도전과 이방원의 피 튀기는 권력투쟁을 겪으며 출발한 조선왕조인 만큼 지배층의 관심은 그들 내부로 집중된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모든 대외관계는 오직 왕명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두만강 책문을 통한 대 명(對明) 관계로만 국한되고 외세의 침략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교통로는 극도로 제한해 전국이 소롯길 만으로 이어지고 말타는 것은 계급적 통제를 하면서 저속사회, 정태적 사회로 후퇴한다. 왜와의 관계도 있었다지만 실상 왜의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상대할 뿐이었고 그들에 관한 정보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 결과가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지로 나타난 것이다.
역사적으로 왕성한 국가일수록 대외개방에 적극적이며 도로망을 확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극적 방어에만 치중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해 번성한 국가나 민족은 없다. 고려 멸망 이후 우리 역사가 보여준 퇴행 역시 그런 역사적 교훈을 전해준다. 산동반도 해안에서 발굴된 고려 무역선의 잔해는 우리가 오늘 무엇을 다시 생각해야 할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선조들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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