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무엇보다도, 희망은 있는가
[괴물] 무엇보다도,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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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교각들은 위압적으로 거대하며, 그 표정은 매우 어두우면서도 서늘하다.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음습하고 불쾌한 하수구들은 그 자체로 괴물에 가깝다. 이 정도의 싸늘한 풍경은 차라리 <복수는 나의 것>에나 어울릴 법하다. 봉준호 감독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국가적 역량의 상징물인 ‘한강’을 낯설고 날선 이미지의 틀로 포착, ‘신화’를 저 뒤편으로 밀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한강은 ‘기적’ 대신 ‘괴물’로 수식된다.

한강에 깃든 일상화된 이미지와 정보를 해체하려 했듯이, 영화 <괴물>은 이른바 ‘괴수장르’와의 결별 또한 선언한다. 괴물의 부분과 부분만을 열거, 전체 형상을 의도적으로 가리며 공포의 증폭을 꾀해온 장르 관습을 뒤로한 채, <괴물>은 백주대낮에 괴물을 드러내고 활보케 만든다. 그러고는 시작되는 이야기. 환기해야 할 두려움의 대상은 ‘괴물’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다.

애초에 인간의 오류에 의해 탄생된 괴물. 이후에도 괴물은 끊임없이 오독되고, 그 주변에는 갖가지 의혹들이 중첩된 채 겹겹이 쌓인다. 의혹은 공포의 정서를 가뿐하게 획득하고, 공포는 ‘실제’라는 가면을 덮어쓴다. 문제는 한강 둔치를 활보하던 그 괴생물체가 정작 공포의 핵심에서는 증발해버렸다는 점. 결국 두려움을 배양시키는 토양은 괴물의 형상이나 공격성 따위가 아니라 정보의 조작과 독점과 재생산인 셈이다. 오만한 가설을 사실인양 선정적으로 토해내는 미디어 앞에서, 따라서 괴물은 점점 더 신화적 존재가 되어간다.

불평등한 국가 관계를 바람직한 질서 차원으로 환원해내는 곳, 누군가의 이익을 공공의 이익이라 호명하는 그 지점에서는, 위험하고 비인칭적인 존재로서의 타자 또한 매우 빈번하게 창조된다. 그러한 조작들은 빼어난 통제력과 효율적인 관리와 그에 따른 질서정연함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질서가 억지로 시스템을 비집고 들어갈 때 생기는 누수현상.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이라, 한강에 내다버린 찌꺼기인 괴물은 물론이거니와 자본주의 피라미드 하단에 위치한 강두 가족 역시, 새는 물에 흠뻑 젖어야만 한다. (모든 희비극의 직접적 원인인) 생명, 혹은 환경에 대한 ‘물화’는 이러한 수직성의 법칙을 부여잡고는 아무런 반성도 책임도 없이 하강곡선만을 반복해서 그릴 뿐이다. 공포의 조작과 거기서 비롯되는 일종의 조작된 포만감이 수직적 물화를 타당한 것으로 만드는 동안, 괴물과 강두 가족을 뒤덮은 ‘치명적 바이러스라는 혐의는 점점 더 굳어간다. 그리고 그 혐의를 광고하는 미디어에 모두가 암묵적 동의를 보내는 바, 괴물과 강두 가족은 오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시스템은 원활한 ‘척’하며 그렇게 돌아가고,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강두는 실험실에 갇혀 실체를 알 수 없는 질식감을 맛본다. 공허하기만 한 ‘제발 내 말 좀 들어 달라’는 강두의 외침. 멀어져가는 현서라는 희망.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아니 그렇게 보이기 위해. 또는 미군의 평화로운 고기파티를 위해.

봉준호 감독은 이러한 질병 규정 및 격리의 과정을 한강의 음지로 끌어들임으로써 어떤 여백을 생성하려 한다. <괴물>에서의 한강은 더 이상 경제발전과 기적과, 자랑스러운 서울의 상징물이 아니다. 실제사건인 ‘독극물 방류의 추억’에 의해 돌연변이로 자라나서는, 자본주의가 흘린 살점들로 배를 채워야 했던 괴물. 그리고 서울시민의 구분 기준 ‘강남인과 강북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시스템 외 존재로서의 강두 가족. 한강은 그들이 기어이 맞닥뜨려야하는 처절한 맨 끝이자, 아무리 비가 내려도 먹고살기를 한시라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치열한 생존본능의 공간이다. 상징계가 해체되고 그 공간 이미지가 역전되는 순간, 한강에서 도출된 낯섦 또한 눈앞에 드러난다. 발전과 자부심의 상징, 혹은 서울시민을 위한 일상적 공간/고의적인 오독이 낳은 패배자들의 영역, 혹은 오류의 터전. 낯섦은 이 두 가지 기의 사이의 여백만큼이나 넓고 깊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참고 견딜 것인가. 또는 부딪칠 것인가. 다시 말해, 도처에 널린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희망은 있는가.’

영화 <괴물>의 답변 - 현서는 깨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희망은 일단 사라졌다. 그러나 쓰러진 세주에게 강두는 묻는다. “너, 누구야? 너, 우리 현서랑 같이 있었어?” 희망의 죽음에서 건져 올린 희망. 그 모호한 희망이라도, 강두는 일단 부여잡고 본다.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먹이고 내가 먹기 위해서. 이를 테면, 살고 싶다면 희망을 놓지 말 것.



<괴물> (The Host, 2006)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강두), 변희봉(희봉), 박해일(남일), 배두나(남주), 고아성(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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