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앞에 선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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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원·엔 환율이 7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23일 한 때 900원선이 깨졌다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이라는 정부의 다급한 해명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날 환율은 903.4원으로 마감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900선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수출 주력상품들은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여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게다가 한국 수출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환율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타격을 받게 되면 한국경제 전반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취약한 구조에서 이런 현상들이 얼마나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인가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대목이다.

그런데 한국의 부채수준이 2008년의 미국보다 높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우리를 꽤 심약하게 만든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맥킨지글로벌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GDP대비 부채비율이 286%로 전 세계에서 부채가 많은 20개국 중 하나이며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로 미국보다도 높다. 또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보다도 높다.

부채의 증가는 비단 미국이나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꾸준히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7년 동안 세계 부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이 유독 높은 부채비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잇단 양적완화 등 확장적 통화정책의 여파로 아시아로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마치 정치적 치적인양 성장세를 내세워 왔지만 결국 이 땅에서 남 좋은 일 시켜주는 빚잔치에 불과했던 셈이다. 한국은 그 가운데서도 성장률은 지지부진했다는 점에서 앞에 놓인 현실이 더 암담하다.

게다가 가계의 형편은 무시한 채 경제성장률에만 집착하느라 금리를 계속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대출 받아 집 사라는 식의 부채 장려정책까지 동시에 실시되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이나 가계는 또 그들대로 대출을 더 늘려가기만 했다. 정부지출은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사업에 집중됐으나 결과적으로 국내 경기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기업들은 수익성이 계속 떨어질 뿐만 아니라 발생한 수익마저 생산적인 설비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개인들은 부채가 늘어나는 만큼 소비여력이 더 줄어들고 있다.

그 무엇보다 가계들이 건강해야 경기 전반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데 지금 수많은 도시가계들은 중년층 부모의 수입에 대졸자 백수 자녀들까지 얹혀사는 형국이라 통계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 직면해있다.

한국사회는 현실적 필요보다 더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인재채용방식, 중소기업 출신으로서는 대기업으로의 직장전환이 거의 불가능한 재취업장벽 등으로 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이 터무니없이 높고 대학생들이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겨우 용돈벌이나 가능한 수준이어서 부모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 없다.

대학 재단들은 수익을 건축 사업에만 쏟아 부을 뿐 장학금 혜택은 과도한 등록금에 비해 참으로 하찮은 수준이다. 그나마 수혜자의 숫자도 매우 적어서 어지간해선 교육비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

그런데 전혀 필요치 않은 일자리에서조차 대졸자를 원하고 전혀 영어 한마디 쓸 일 없는 일자리에서조차 토익 몇 점이 중요하며 해외연수 이력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부모들은 더 허리가 휜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시켜놔도 청년층 일자리가 너무 귀해서 목적 없이 대학원을 가거나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만 하고 있는 자녀들 뒤치다꺼리까지 해내고 있다.

교육비 부담에 내몰려 노후준비까지는 미처 눈 돌리지 못하는 부모세대들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청년층이 더 세월이 지난다고 부모 봉양할 능력이 생길까. 제 한 몸 챙기기에도 급급해 결혼마저 포기한다는 세대인데.

이런 가계의 쫓기는 상황들이 결국 한국경제 전체를 늪 속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장 코앞의 해결책을 찾겠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지금 국가사회의 기반이 이렇게 흔들려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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