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자 한국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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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은 민간부문 노사갈등을 부추긴다고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입장이 입장이니만큼 그런 성명 내용이야 충분히 나올 법하다.

그러나 성명서의 그 빈약한 논리를 보는 입장에서는 좀 가슴 답답하다.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의 입장을 밝히는 문건인데 인류사까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의 역사적 비전에 대한 일말의 염려는 묻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들 단체를 이끄는 기업인들은 자칭 타칭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다. 명실 공히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야 할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단지 노동자들과의 ‘전투’에만 관심이 매몰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보탬이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논리가 빈약한 사회다. 암기식 교육, 서열화를 위한 점수획득 위주의 교육에 더해 역사 교육도 무시하고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도 모른 채 서둘러 졸업장만 받으면 그만인 사회의 책임이다. 그런 천박한 문화 환경이 지배하는 사회가 낳을 수 있는 기형적 인간 군상들이 양산된 결과 사회 지도급 인사들조차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들이 펴는 논리는 마냥 빈곤할 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화 전략을 말할 때조차 역사적 맥락을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은 없고 단지 코앞의 상황을 이겨나가기 위한 ‘전술’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미국식-혹은 아류로서의 일본식- 논리 베끼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학자들 사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유학파들을 중심으로 더 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국내 대기업과 재벌들의 옹색한 행태만 보다가 가끔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외국 경영자들의 이런 저런 얘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거액을 아무 조건 없이 토네이도 하는 저들의 문화는 단지 조세 회피 차원에서 문화재단 등을 만들어 명목뿐인 사회 환원을 하는 국내 재벌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물론 저들이라고 모든 기업인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회기부 행위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어떤 의식과 판단을 갖고 행동하느냐다.
그들은 사회 공동체의 내일을 얘기하고 그 안에서 지도급 인사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말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구질구질 토를 달지도 않는다. 그래서 신선하게 보이고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의 경영자들이 초라해 보여 안타깝다.

보험 상품 중에는 개런티 상품이란 것이 있다. 보험금을 일정 기간 단위-통상 1년-로 재조정하는 상품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유독 이런 상품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정부나 소비자 모두 보험회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상 경제적 상황이나 평균 수명 등 여건이 변화하면 거기 맞춰 보험금을 재조정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 이는 보험회사가 매번 합리적인 조정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전제가 충족되지 못하면 상품이 출시된다 해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보험업에만 해당될 일은 물론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협상하고 타협하는 데 서툴고 그로 인해 노사 갈등은 늘 서로 끝을 봐야겠다는 식의 극단으로만 치닫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실은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일 터이다. 그런 불신이 해소되자면 서로 공통의 인식을 쌓아가야 하고 그러자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지도적 위치에 있는 기업인들이 먼저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 역시 사회적 책임을 사용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인내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마주 싸우자고만 덤빈다면 그 끝은 모두에게 비극일 수밖에 없다.  마침 이즈음의 중동 정세가 그런 비극을 보여주는 성싶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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