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은행의 '척하면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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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가계부채는 당장 이번달(3월) 기준금리 인하로 달라질 문제는 아니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1.75%로 인하한 3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말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 우려에 대한 안팎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지만, 사실상 가계부채 문제를 정부 및 금융당국의 영역으로 공을 넘긴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힘을 보탤테니 금융불안 요소는 정부 정책으로 해결해달라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은이 '금융안정'이라는 역할을 등한시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한은은 그간 금리동결 기조의 배경으로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을 꼽아왔다. 이 총재도 직접 "현재의 가계부채는 소비를 제약하는 수준"이라고까지 언급하며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물론 한은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1%대 기준금리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가상승률이 0%대를 거듭하는 가운데 새해 들어서도 내수가 부진하고 수출은 3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후처를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백약이 무효하다'는 디플레이션 파이터로 링 위에 오른 것은 일면 다행스럽다는 평가도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척하면 척' 발언으로 인한 독립성이 훼손 논란 역시 이 총재의 언급처럼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대책은 이 총재의 바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최근 2차에 걸쳐 20조원이 투입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가계부채의 급증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리변동 리스크가 적은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실위험이 낮은 은행권 대출자들이 대상이다.

오히려 은행권 수익성에 부담을 안기는 한편, 안심전환대출에서 소외된 대출자들 사이에서는 추가적인 이자경감 대책을 압박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일부 금통위원조차도 정부의 이같은 대책에 대해 '가계부채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부진한 주택시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 회복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한동안 가계부채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가계부채의 폭발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당국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머지 않아 터질 '시한폭탄'이라는 엇갈린 시각이 나온다.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분석을 통해 근본적인 가계부채 구조 개선책 마련에 당당히 제언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행이 폭주하는 가계부채에 기름을 부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는 '척하면 척'이라는 세간의 시각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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