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달러 신화
흔들리는 달러 신화
  • 홍승희
  • 승인 2003.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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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 이라크전 역시 대 아프가니스탄전과 마찬가지로 싱겁다 할만큼 미국 입장에선 쉽게 끝났다. 애당초 유엔무기감시단을 투입해 이라크를 사실상 무장해제시켜 놓았고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도 않았다. 미국 언론이 요란하게 선전해준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니 민병대니 하는 것도 전쟁이 끝나고 보니 괜히 허수아비 세워놓고 표적맞추기 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만큼 허망한 모습만 보였다.

어떻든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인 클러스터 폭탄이나 열화 우라늄탄, 모압탄 등을 쏟아부으며 과거 중동의 최강자였던 이라크를 초단기로 초토화시키자 반전을 외치던 세계 각국도 일단은 입장 수정이 불가피해져 버렸다. 이라크의 석유 때문이든 전후 복구사업 때문이든 또는 미국의 그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위협 때문이든 기세등등한 미국의 위력 앞에 몸조심하는 모습이긴 매한가지다.

미국을 향해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부르던 국내 수구세력들도 마침내 그 친미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면 아래로 들어갔던 색깔론도 공공연하게 들먹여지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폭격 위협이 시도 때도 없이 거론되는 와중에 미국과 입장을 맞춰가며 대북 강경론으로 기세를 떨칠 작정을 하고 나선 듯하다.

이같은 모양새는 지난 50여년간 이 땅을 지배했던 반공이데올로기의 여진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미국을 향한 일방적 짝사랑이 경제문제에 관한 현실적 인식을 가로막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힘은 막강한 군사력에서부터 나온다.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왕성한 소비욕 역시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력이 받쳐주고 있다. 그 달러가 흔들리면 세계 경제도 너나없이 그 진동을 공유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달러가 요즘 잦은 진동음을 내고 있다. 이라크전의 종전 선언이 있고 난 직후부터 달러화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대 이라크전에서 단기간에 승리하면 세계 경제에 밝은 빛이 비치리라던 호전주의자들의 환상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과 3주만에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지난주 국제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 일본 엔화 등에 대해 일제히 약세를 나타냈다. 영국 파운드화나 오스트렐리아 달러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들 미국 달러 외의 통화들이 강세를 띨 특별한 재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이는 요즘 국제외환시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지각변동을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해보도록 하는 요소다.

국제외환시장의 변화 가능성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최근들어 중남미 통화가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올 초까지 약세를 지속하던 중남미 각국의 통화가 미국 달러화 약세와 반비례하듯 강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은 국제외환시장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매우 미약한 사례이지만 전반적인 움직임과 같은 맥락에 놓고 보면 간과해선 안될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혹여 한국 사회가 예의 그 명분론이 작동할 조짐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조선조 사회를 중화사대의 일방적 분위기로 몰아가며 폐쇄적 국가로 만들어 끝내는 민족적 치욕을 기록하게 했던, 사람보다 이념이 앞선 퇴행적 명분론으로 세계를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자주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다원성이 죽고 흑백론이 판쳐서 건강한 사회란 없다.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성이 긴요하다. 그 역동성은 다양성으로부터 나온다. 열린 사고 없이 다양성은 수용되기 어렵다.

미국이 현재적 절대 권력으로 세계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힘은 영구적일 수 없다. 한국 사회 수구세력들의 미국 일방적 시각은 일종의 우상숭배에 가깝다.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가 일정 정도는 그 수구적 가치에 오염돼 있다.

이제 그 오염된 가치의 정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편향성이든 다 벗어버리고 세계를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보며 각각의 내재적 힘과 가치를 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럴 때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환상도 조금은 다른 색을 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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