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 블록딜 무산 여파,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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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시나리오 깨져…모비스 주가에 '호재'

[서울파이낸스 김소윤기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대량매매(블록딜)가 무산되면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자회사 합병 기대감이 희석되면서 투자매력이 크게 훼손됐다는 평가다.

◆ 글로비스 블록딜 추진 배경은?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정 회장 부자는 현재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각각 430여만주(11.51%)와 1190여만주(31.88%) 가운데 502만주를 종가보다 7.5~12% 할인된 금액으로 매각을 추진했다. 이는 현금으로 환산하면 총 1조3000억원이 넘는 규모다.

이와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 블록딜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리스크를 완화시키고 그룹 지배력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란 대주주일가의 지분율이 30%(비상장사 20%)를 초과하는 기업의 경우,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규모가 200억, 연매출의 12%를 초과할 시 부당 이익 제공으로 간주해 위반금액의 최대 25%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2월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일명 일감 몰아주기법)에 따라 대주주 지분율을 30% 이하로 낮추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공정거래법 상의 벌금의 규모를 떠나 한국 공정거래법을 준수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주주들의 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글로비스에 대한 가치평가 보다는 법규 준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표면상으론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이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대상에서 회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승계의도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날 글로비스 지분 13.4%에 대한 블록딜 추진은 기관들의 참여가 적어 성사되지는 못했다. 매각 물량이 방대해 적당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데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현대글로비스 주가 충격…모비스 '활짝'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현대글로비스가 개장 직후부터 하한가로 추락했다. 당초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최대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점쳐졌지만, 정 회장 부자가 비교적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면서까지 지분을 매각하려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단기 약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는 사실상 깨졌다.

현재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정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31.88%다.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은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높고 현대모비스 주가는 낮아야 정 부회장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은 기존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는 상이한 전개였기 때문에 시장에 충격이 컸다.

반면,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줘,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낮았던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모처럼 어깨를 폈다. 현재 현대모비스는 이번 블록딜 무산 영향으로 10% 넘게 급등세를 보였다.

이재일 신영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현대글로비스 주식은 사고, 현대모비스 주식은 팔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약화돼 (현대모비스 주가를 짓누르던) 지배구조 관련 디스카운트 요소가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양희준 BS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수년 간 오너 일가가 높은 지분율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는 가치를 계속해서 끌어올릴 것이고,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대상인 현대모비스는 주가를 누를 것이라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했다"며 "이제 이러한 '롱-숏' 관점이 유효성을 상실함에 따라 현대모비스의 밸류에이션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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