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니' 는 이제 그만
'고마니' 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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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재경부 분위기는 소나기 내리 쏟기 직전일 듯하다.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한 때 재경부의 꽃이라 불리던 금융정책국장으로 이 나라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던 변양호 전 국장이 구속된 것이 결코 남 얘기만일 수는 없을 터이다.

뿐인가. 이헌재 전 장관에 대해서도 검찰이 손을 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최종적인 결과는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밝혀져 가겠지만 일단 재경부 출신 역량있는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을 상대하게 된 이런 모양새는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다 재경부가 이런 지경에 몰렸을까. 원죄는 IMF 구제금융을 받도록 상황을 초래한 당시 정권에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재경부가 누구 탓을 할 처지도 아닐 성 싶다.

일단 국내 산업자본으로부터도 보호하던 금융기관들을 덜컥덜컥 해외 투기자본에 팔아치운 솜씨가 화근을 부른 모양이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국영기업 민영화를 피할 수 있는 국가는 없겠으나 완전 무장해제한 모습으로 IMF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고 헐값매각 소리를 들으면서도 서둘러 팔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그간 계속 들어온 터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외자를 끌어올 수 있었겠느냐는 논리로 맞섰지만 불행하게도 금융권에서는 ‘매국노’소리까지 듣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불투명한 거래가 있었다니... 국가를 부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돌팔매를 뚫고 국가 기간산업 해외 매각에 열을 올리던 모습이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가증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으로는 현재 드러난 모든 현상들이 ‘모두 오해였으면’ 싶다. 적어도 재경부 직원들 사이에서 의욕적인 관리로 좋은 평판을 들었던 이들이 그 의욕에 치여 낙마하는 정도를 넘어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모습은 자칫 공무원 사회의 무사안일을 부추기는 부작용만 낳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든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종종 쓸 만큼 의욕 억제를 강요하는 네거티브적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 분위기의 지배를 받으며 국가적 명운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사안일은 국가적 동력을 갉아먹는 주범이고 지금도 공무원 사회는 그 무사안일이 문제인데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곤란하지 않을까.

사고 치지 않는 모범생이 의욕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다 갖추기는 어렵다. 의욕없는 모범생과 의욕 넘치는 사고뭉치. 누구에게 더 미래가 있을까. 과거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미래 사회는 의욕 없는 모범생보다 의욕 넘치는 사고뭉치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창의성은 바로 그런 의욕의 산물이니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는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기울여왔고 그 와중에 여러 번 이번 사건과 같은 충격도 받았다. 특히 대외 관계에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국제적 역할을 기대했던 이들이 불투명한 금전 거래 등의 행적으로 무대 뒤로 사라졌다.

국내 최초의 IOC 위원이었고 위원장 후보로까지 거명되던 김용운 씨, 아시아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을 향해 질주하다 추락한 홍석현 씨, 세계 최초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국가의 미래를 장밋빛 꿈으로 채워주다 졸지에 사기꾼으로까지 몰린 황우석 박사 등등.

국어사전에도 올라있지 않은 오래된 표현 중에 ‘고마니가 끼었다’는 게 있다. 잘 나갈 때 제동을 거는 걸림돌, 즉 성장세에 급브레이크를 걸며 ‘고만 하라’고 가로막는 게 고마니다.

우리 사회가 전세계를 향해 역동성을 쏟아내려 할 때마다 무언가 고마니가 끼인 듯 덜컹댄다. 그래서 잘 잘못의 진실 이전에 안타깝고 음모론을 가볍게 듣지 못하게 한다. 오랜 은둔의 세월을 걷고 세계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가로막는 무언가를 느끼기에.

문제는 우리의 의욕을 잠재우려는 그 고마니가 안에 있는 것인지, 밖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안팎 모두에 있는 것인지가 좀 애매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고마니를 걷을 때가 됐다.
 
그러자면 좁은 마당의 음지를 없애려 해야 할까, 아니면 더 넓은 양지를 개척해 가야 할까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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