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미장두(露尾藏頭) 사회의 미래
노미장두(露尾藏頭) 사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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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같으면 12월도 되기 전부터 연말 분위기를 잡기 위한 시끌벅적한 이벤트들이 줄을 잇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부터 신년 초하루까지 이어지는 세모에는 가난한 주머니라도 열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몇 푼 기부하는 문화가 그럭저럭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또 이 무렵이면 TV에서는 여러 채널에서 앞 다퉈가며 가슴 따뜻한 드라마들로 경쟁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는 이미 그런 계절이 마무리돼 가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느니 절망적인 소식 아니면 추운 날씨마저 무색할 가슴 서늘한 뉴스들뿐이다.

이미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얼어붙을 만큼 얼어붙었는데 내년도 한국경제의 전망도 어둡다. 정부는 내년 성장전망을 당초보다 하향조정했고 해외 금융기관들의 전망치도 낮아지고 있다. 늘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 정부 스스로 올해의 성장목표치 미달을 예고하고 내년도 전망치를 낮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 엄중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움츠러들 뿐.

이런 경제전망보다 더 우리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절망하게 하는 소식들은 따로 있다. 총론에 강하고 각론에 취약한 우리 문화의 특성으로 보자면 부분적인 일, 부차적인 일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며 현상들이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면 더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온다.

이미 취업문 앞에서 좌절하는 청춘들이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을 보내는 노인층의 문제는 익히 들어온 터라 그러려니 넘어가더라도 그런 부양가족들을 책임지며 스스로의 불안하기 그지없는 노년을 기다리는 중`장년층의 가슴은 또 얼마나 시릴까.

그러나 이런 불안과 좌절도 또 어떻게든 우리가 헤쳐 나갈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기대가 우리들 속에 살아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시절을 극복해온 한국사회의 집단경험이 젊은 청춘들이야 실감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까지 가세한 각종 미디어를 통한 보수적 이데올로그들의 세뇌에 가까운 반복학습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복학습의 과정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오는 뒷면의 그림자들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보수적 이념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종종 잊고 있었던 그 캄캄하기만 하던 정치적, 정신사적 암흑기를 자꾸 떠올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필자의 올해 연말은 망년회에서 유난히 ‘술이 땡긴다’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사실이 도드라진다. 그들은 대부분 이 사회의 지식인 계층이면서 그럭저럭 중산층의 삶을 향유하는 중`장년층 혹은 노년층이다. 물론 자칭타칭 강남좌파들도 포함돼 있다.

그들의 절망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의원직 박탈에서 극에 달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평소 통진당을 좋아했던 부류들도 아니다. 다만 그 정도의 사상적 융통성마저 허용할 수 없는, 포용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옹졸함, 편협함에 절망하고 이런 분위기가 유신시절의 그 암담하던 기억들-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을 잊지 말라고 가해오는 채찍질에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국민들을 믿지 못하고 꼭 몇몇의 권력이 원하는 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만 하느냐는 순진한 술타령은 그냥 흘려보내자. 어차피 권력의 속성이 그러한 것일 테고 또 그 속성을 거역하면 뒤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도 겪어봤으니까.

필자가 더 걱정스럽고 정신 아득해진 일은 원전 내부문건 유출사고. 사고 그 자체보다 이후의 대응태도였다. 참 쉽게도 ‘국기문란’이 거론되는 사회에서 일단 터진 사고에 대해 정밀한 대응책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그저 장`차관이 다른 일 미뤄두고 자리만 지킨다는 것도 민망했지만 미국계 파일공유사이트를 통해 이미 충분히 노출되고 있는 정보를 한국에서의 접속만 막아달라고 했다는 대답을 보며 순간 멍했다.

외국에서는 마구 퍼 날라 돌아다녀도 속수무책이면서 내국인들만 모르면 된다는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여론의 질타만 피하면 유출 정보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마구 퍼져나가는 일은 별 것 아니라는 것인지, 아니면 쫓기던 꿩이 낟가리 속에 머리만 숨기듯 내 눈에 안보이면 세상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생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나라에서 창조? 창작?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머리를 조이는 압박감이 손끝 재주는 피워낼 수 있어도 미래를 바꿀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는 없다. 그것이 무엇보다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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