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카드채 해법의 그늘 ③문제의 본질은 레임덕?
(연속기획)카드채 해법의 그늘 ③문제의 본질은 레임덕?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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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카드채 부실 조짐 언제 알았나
공무원 보신주의에 따른 정책 실기 의혹.


카드채 문제를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한 때는 3월 중순이었다. 정확히는 1차 금정협 회의가 열린 3월 17일을 전후한 때다. 그렇다면 과연 카드사 부실에 대한 경고는 3월 들어 제기된 것일까. 금감원이 카드사 유동성 위기를 포착한 정확한 시점은 언제일까.

2002년 10월 22일, 굿모닝신한증권은 보고서를 하나 냈다. 신용카드의 신용이슈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신용카드사는 정책적 차원의 성공신화 종언과 유동성 리스크 확대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카드사에 대한 시장의 긴장을 감안할 때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투자자들의 카드채 편입규모가 한계에 이르면서 재원조달 측면의 운용수익률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신용카드사 CP 비중이 약 35∼4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기가 짧은 만큼 의존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급격히 유동성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카드채 시장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음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다. 그리고 신용카드사의 경우 AA 자격이 없기 때문에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하향할 것을 주문했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신평사들은 올해 3월 26일에서야 카드사 신용등급을 하락시켰다.) 이 당시는 카드사 주식이 이미 반토막이 나 있던 때다. 시장을 선행 반영하는 주식시장이 이미 카드사에 경고음을 울렸고, 뒤이어 채권시장에서도 경고음을 울렸던 것이다.

그 다음 달인 2002년 11월 15일, 연합뉴스가 금감원발 뉴스 하나를 보도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용카드 연체율 급증에 따른 신용카드사들의 신용도 저하로 카드채 발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월중 신용카드사들의 카드채 발행총액은 26건에 9천560억원에 달해 9월 35건에 1조3650억원에 비해 29.9%가 감소했다… 카드채 시장소화 여건 악화로 신용카드사들이 카드채를 직접 발행하지 않고 ABS 발행을 늘리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10월과 11월 상황을 이렇듯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재경부를 필두로 한 정부 경제 책임자들이 그 당시 이미 카드사들의 유동성 위기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일반에 알려진 사실, 즉 정부가 카드사 부실에 대해 선제적으로 잘 대처했다는 주장과 달리 실제는 공무원 보신주의에 따른 정책적 실기라는 상반된 결과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는 소설을 한 번 써 보자.

카드사 경영 현황은 분기마다 보고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상 징후가 보일 때는 월별로 잠정치를 보고 받기도 한다. 감독당국도 예언자가 아닌 이상 지난 해 9월에 카드채 위기를 예견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분기인 12월에는…? 앞서 살펴본 여러 정황에 따라 10월부터 시장에서 경고음이 울렸다면 분명 12월에는 어느 정도 위기 징후가 포착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빨리 파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드사 주가는 9월 들어서자마자 폭락하기 시작해 10월 초에 최저점을 기록했고 채권시장 유동성 위기도 10월 들어 가시화됐다. 그러니 늦어도 11월에는 심각하다는 상황 인식에 도달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 또한 직무 유기가 된다. 금융시장 감시를 위해 고용된 금감원 수백명 직원들이 각종 정보를 독점하고도 증권사 연구위원보다 늦게 위기를 파악한다면 존재 이유조차 의심스러워지니까.

그럼 10월, 혹은 11월에 위기상황을 인식했다는 전제 하에 뒷얘기를 이어나가 보자. 여기서는 易地思之가 필요하다. 내가 만약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었다면, 아니면 금감원 비은행감독국장이었다면 조기에 포착된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 것인가. 몇 가지 방책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해 11월은 한참 대통령 후보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던 정권교체기였다. 이라크 전쟁설, 후보단일화 등 정치, 외교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다. 시기적으로 대통령의 영향력이 땅에 떨어질 만큼 떨어진 레임덕 시기였던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1, 2차 카드채 해법을 역으로 살펴 보면, 그 당시에도 분명 카드사 부실 문제가 금감원 비은행감독국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최종 인가가 필요할 만큼 크고 연쇄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대선을 코앞에 둔 극도로 혼미한 정국이다. 그렇다면 정부 정책자들과 감독자들은 애써 문제를 드러내 혼란과 책임을 야기하기보다는 시장에서 SOS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를 선택했을 확률이 높다. 괜히 잘못 건드려 긁어 부스럼 만들기보다 시장을 지켜보며 문제를 방치해도 그 잘못은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그러나 이를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앞서 밝혔듯이 소설을 한 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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