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을 바라보는 인식 불균형
재벌을 바라보는 인식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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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일명 땅콩회항사건 이후 가뜩이나 곱지 않던 재벌가 후계자들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런 까닭에 철없는 3, 4세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경영 일선에 버티고 선 그들의 부모들은 일단 긴장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나온다.

실상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없는 필자로서는 과연 그럴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결국 소비자들 쌈짓돈 챙겨 쌓아가야 하는 부의 왕국 주인들로서는 긴장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재벌들을 향해 훈수 두기에 열을 올리는 이쪽저쪽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시절인지라 필자까지 그런 훈수꾼 대열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 자손들을 통해 보는 재벌왕국들 간의 후계자 선정방식이 꽤 흥미 있어 보여 잠시 함께 살펴볼까 싶다.

소위 ‘논다’ 하는 젊은이들의 천국이라는 ‘강남존’에서는 한국의 대표재벌인 S그룹 자녀들과 L그룹 자녀들 사이의 재미있는 차이점이 회자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S그룹 자녀들이 L그룹 자녀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대에 이미 후계구도가 자녀들 간의 치열한 경쟁 체제로 자리 잡은 S그룹 자녀들은 놀더라도 선을 넘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를 해가면서 노는 반면 장자승계의 원칙을 지켜오고 있는 L그룹 자녀들은 거의 방목되다시피 하는지 남들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L그룹의 경우도 장남은 철저히 후계자 수업을 시킨다는 보도를 보면 아마도 후계구도에서 일찌감치 소외된 자녀들의 얘기일수도 있을 성싶다.

이들의 경영권 승계 과정은 형제간 경쟁에 의한 세습이든 혹은 장자 세습이든 이들의 경영권 세습 형태는 분명 왕조시대의 세습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왕국의 존망보다 혈연에 의한 세습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시대를 표방하는 한국 대표기업 오너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섣불리 전문경영체제만을 지지하기에는 이제까지의 성과가 신통치 않다. 물론 사례도 충분치 않지만 그간 전문경영체제가 외풍에 너무 쉽게 와해되는 사례들을 보아온 터인데다 오너를 향한 충성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는 가신그룹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한 한국에서 혈연승계에 의한 경영권 대물림이 쉬이 사라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부의 조사를 받으러 가는 과정에도 임원급만 4~5명이 따라갈 정도로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경쟁이 낯 뜨거울 정도인 한국사회에서 오너 일가들은 당당한 왕족으로서의 특권의식에 길들여지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기야 어느 신문사 오너 사장이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는 소속 신문사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쳐 화제가 되기도 한 우리 사회이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 기자들의 모습은 바로 지금 한국의 메이저 신문들이 갖고 있는 멘탈리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조직 앞에서 상대적 독립성을 갖는 개인이 존재하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실상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에서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일단 장악된 조직을 혈연승계를 함으로써 스스로 ‘고귀한 왕족’으로 군림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일단 부동의 권력과 재력을 승계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자들로서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국체가 아직 민주주의 국가인 게 더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그런 우리가 지금 북한에서 벌어진 3대 세습을 당당하게 비웃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지금 북한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한가득 비웃음을 머금고 본다. 경제적으로는 한없이 낙후돼버린 사회, 글로벌 관점에서 보자면 인권지수는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회, 옛 왕조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지배자의 혈통존중과 그로 인한 3대 세습 등등.

그런 북한이 같은 민족인 게 부끄럽다는 이들도 적잖다. 그런 이들이 왜 재벌 경영권의 혈족 세습은 당연하게 바라볼까 때때로 의아하다. 기업은 개인이 노력해 일군 것이고 국가는 국민이 함께 세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기업을 처음 시작한 창업자가 있듯 하나의 국가의 건국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래서 세습을 지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우리의 사고가 균형추를 잃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씩 걱정스러워서 하는 객쩍은 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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