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을 향한 무기력한 분노
'갑질'을 향한 무기력한 분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 나가던 수학자인 서울대 교수가 성추행 혐의로 구속됐다. 학교측에서는 그저 사표 수리로 간단히 끝내고 싶었지만 사회여론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수리를 미루고 법적 처분을 지켜보기로 해 이 수학자는 이제 학자로서의 생명까지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이런 교수의 학생 성추행 사건은 지금 대학가 곳곳에서 잇따라 터지고 있어 대학가가 마치 지뢰밭이 된 모양새다. 대체로 대학측은 학생보다는 교수의 인재를 아끼는 분위기여서 이제까지 성추행사건을 매우 미온적으로 대해왔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사회에 자성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한국사회가 다시 한 단계 성숙하는 좋은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런 대학에서 교수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을 학생들은 철저한 갑을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갑의 횡포라고 말한다. 교수의 평가에 의해 성적은 물론 학생의 인생 전반이 좌지우지될 정도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말인 듯하다. 특히 대학원은 학부보다 그 권력관계가 더욱 공고해서 대학원생들의 처지가 매우 비참하게 전달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갑을관계에서 벌어지는 소위 말하는 ‘갑질’이 이번에는 항공기의 회항이라는 매우 희귀한 사건을 몰고 왔다. 일명 땅콩회항이라고 불리는 대한항공의 이번 사태에 대해 세계적 여론마저 비웃음 가득한 상황이어서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인 항공사의 이미지는 실추될 대로 실추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이 서비스 부족을 질타하는 부사장의 분노에서 출발했다는데 그 부사장이 다름 아닌 오너 일가라는 점에서 갑질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저런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나 이번에는 경영자 한 개인의 판단으로 비행기가 회항하며 사무장은 비행기에서 내쳐지고 수백명 승객은 적잖은 시간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는 점에서 수많은 패러디 물을 양산해내며 희화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어느 사회에나 힘을 가진 쪽의 횡포가 없는 사회는 물론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물리적 힘이든 혹은 정신적 힘이든 그 무엇이라도 행사하고 싶어 무리를 하게 되는 게 힘의 속성이니까.

다만 그런 힘의 속성을 제대로 인정하고 그 힘에 사회적 견제를 적절히 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차이가 매우 클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성숙단계는 매우 낮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힘에 너무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밥그릇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미 계층간 벽이 너무 높아지면서 을의 위치에 서는 순간 누구나 무릎의 힘이 삽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과거 사회라고 갑을관계가 없었을 리도 없고 또 미래 사회라고 그 근본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갑의 횡포에 맞서는 을을 응원하기보다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더 팽배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다 크게 여론화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갑질을 맹비난하지만 스스로 을의 위치에 서고 나면 정신적으로 이미 한풀 꺾이며 한없이 나약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번 회항사건을 보며 갑질에 대해 비난하거나 희화화시키는 인터넷 상의 반응들도 그 밑바탕에는 이미 견고해져가는 벽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들이 묻어난다.

그런데 조금 색다른 시각의 네티즌 글이 발견된다. 이미 우리는 힘 앞에 너무 무기력해지는 노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었다. 우리가 체념과 무력감에 젖어드는 현상을 꽤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요약, 소개해본다.

[부사장이 한 짓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일단 이륙하고 나면 비행기 안에서 최고 갑의 위치에 서게 되는 기장이 단지 부사장의 명령이라고 그 즉시 회항한 것은 무엇보다 기장의 잘못이 크다. 일단 기장은 승객 전부에 대한 안전과 편안한 서비스가 가장 큰 의무이고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잘못이다. 또 부사장의 명령이 불합리한 것이니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차분히 설득하고 비행을 지속할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회사가 입을 이미지 타격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