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주민번호, 오랜 습관 뿌리뽑을 묘책은?
[전문가기고] 주민번호, 오랜 습관 뿌리뽑을 묘책은?
  • 최경환 한국인터넷진흥원 선임연구원․법학박사
  • loraciel@kisa.or.kr
  • 승인 2014.12.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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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선임연구원(사진=한국인터넷진흥원)

올 한해 개인정보보호 분야의 이슈에 대해서는 다양한 내용들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8월 7일에 시행된 개인정보 보호법상 '주민등록번호 처리금지 제도'가 으뜸으로 꼽히는 이슈라 하겠다.

지난 반세기 가까이 우리 국민 모두가 주민번호를 애용해 마지않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상을 영위하는 도처에 두루두루 퍼뜨려 놓고 즐겨 쓰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이 적잖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의 오랜 습관이 새로운 법제도에 의해 금지됐고, 그러면 대체 무엇으로 그 습관이 메꿔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데서 오는 혼란일 것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접수되는 주민번호 처리금지 제도와 관련한 질의를 보면, '주민번호 말고 상대방이 본인인지 확인할 방법이 대체 무엇인가?'하는 단순한 의구심에서부터 '큰 액수의 금전거래나 분쟁의 해결에는 반드시 주민번호가 필요하다'는 확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주민번호의 중요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대립도 이러한 혼란에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하면서 일선 현장에서 접한 바로는 어떤 사람들은 '개인정보=주민번호'라고 생각해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주민번호는 수없이 유출된 것'이니 오히려 금융정보나 민감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지 '이제 와서 주민번호 사용을 막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번 주민등록번호 처리금지 제도를 두고 '괜히 업무만 복잡하게 하는 불필요한 제도'라고 폄훼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요컨대 유독 주민번호 사용만 금지하는 것이 실제 개인정보보호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지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그간의 습관을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과 불신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너나없이 오랫동안 주민번호를 사용해 왔던 우리의 습관은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이제부터는 '잘못을 고치라'고 하는 것인가.

습관에 관해 깊이 성찰한 것으로 유명한 B. 파스칼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합리적이라든가 올바르다는 데에서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주민번호의 탄생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전 국민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13자리 숫자의 편리성만으로도 주민번호는 이래저래 널리 사용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게다가 IT 강국으로의 발 빠른 도약 과정에서 빚어진 악성댓글 등 부작용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이래 온라인에서 주민번호만큼 각광받는 개인정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주민번호는 그저 편리하고 확실한 도구이지 시시비비의 문제로 접근할 대상이 아니며, 주민번호를 사용하는 습관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로 논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처음 습관을 들일 때는 알지 못했던 폐해를 막상 알게 되고도 여전히 그 습관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시시비비의 대상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편리함을 추구하며 주민번호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관리의 부실이나 안전조치의 미비 등으로 국민 전체인구의 2배, 3배에 달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고, 공공·민간, 온·오프라인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유출된 개인정보들이 주민번호라는 '마스터 키'를 중심으로 범죄자들의 손에서 결합되어 보이스피싱, 스미싱, 파밍 등 범죄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극심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고 보면, 주민번호 사용을 그저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우뚝 서고, 빅데이터 시대의 메카로 자리 잡는 등 우리가 원하는 위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보보안이 필수적이라는 데 이론은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안의 실정이 이쯤 되고 보면, 주민번호 사용 습관은 변화하면 좋고 안 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우리의 성공과 실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주민번호 사용에 대한 인식만 살짝 바꾸면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게 놀랄 만큼 쉽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전 국민에 부여하는 고유불변의 숫자라는 우리 주민번호의 특성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나라는 주민번호 없이도 공공분야와 민간분야의 온갖 일들을 처리한다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주민번호는 다른 수단으로 대체될 수 있으니, 생각만 바꾼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하는 '주민번호 미수집 전환지원 서비스'와 '주민번호 파기에 관한 컨설팅'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다.

오랜 주민번호 사용 습관을 뿌리째 바꿀 묘약은 어떤 법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가짐의 변화이다. '습관은 법률보다도 하는 일이 많다'고 했던 독일의 철학자 J. G. 헤르더의 말처럼, 이번 제도를 계기로 삼아 법률이나 정책보다 하는 일이 많은 좋은 습관을 다시 들인다면 우리사회의 지긋지긋한 개인정보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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