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권 CEO 선출 과정은 '요지경'
[기자수첩] 은행권 CEO 선출 과정은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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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은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외부 압력을 받아 공정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A은행 관계자)

"밀실에서 회장을 뽑는다는 시선을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겁니다."(KB금융지주 사외이사)

최근 은행권 CEO 자리가 줄줄이 교체되고 있는 가운데, 선출 과정을 둘러싸고 저마다 다른 원칙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과정을 '비공개'로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이유를 들어 오히려 '공개'를 택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사실 은행장 등 새 CEO 선출 과정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왔다. 후보 선정 과정부터 자격 기준까지 일일이 공개하는  KB금융 사례가 이례적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KB금융의 선택이 나쁘지 않은 셈이 됐다. 선출 과정이 낱낱이 공개된 끝에 결정된 새 CEO가 업계 안팎의 호평을 받고 있는 데다, '관치'와도 크게 거리를 뒀다는 시각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의 관행을 고수하고 있는 기관은 안팎으로부터 의혹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른 은행연합회의 선임 과정이 그렇다.

사실 은행연합회장의 경우 선출 과정은 의례적 형식일 뿐, 최종 낙점자는 결국 금융당국이 결정한다는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향후 은행연합회의 3년을 이끌어 갈 수장을 뽑는 일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번 12대 회장 선출과정은 단순하고 폐쇄적이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후보군 선정이나 논의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금융권의 일반적 시각인 듯 하다.

여기에 이사회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금융당국발(發) '하영구 내정설'이 흘러나온 만큼 금융권 '밀실인사', '관치금융' 의혹은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우리은행도 CEO 선임과정에서 입길에 올랐다. 최근 우리은행이 행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선출 작업에 돌입했는데, 첫 회의를 연지 며칠 되지도 않아 후보군 윤곽이 '2파전'으로 굳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순우 현 행장과 이광구 부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이 행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대구고' 인맥, 이 부행장은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 인맥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라인'까지 갈리는 모양새다. 비공개 형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연과 인맥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관치 의혹에서 비켜서지 못한 모습이다. 내·외부 출신 후보간 치열한 경합으로 막판까지 판세를 읽기 어려웠던 KB금융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KB금융 회장 선임을 계기로 해묵은 낙하산, 관치금융 논란이 잦아들 것이라는 기대감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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