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리터카 시대'의 낡은 경차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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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송윤주기자] 손가락 한 마디 길이를 두고 자동차 업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한창이다. 앞서 국내 경차 기준에서 너비 몇 센티미터를 초과한다는 이유로 해외 경차 수입이 수차례 무산된 바 있지만 최근 국토교통부가 차종 분류 기준을 새로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다시 쟁점화되고 있다.

수입차 업체가 경차 기준에 목을 매는 이유는 경차 혜택 때문이다. 한국은 배기량 1000cc 미만과 길이 3600mm, 너비 1600mm, 높이 2000mm 이하의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차량에 한해 각종 세금 면제와 통행료 및 보험료 할인, 유류세 환급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르노 트윙고, 폭스바겐 업 등은 너비가 1640mm라 국내에서는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분류된다. 수입차 업체는 수입 과정에서 드는 비용 탓에 국산 경차보다 가격이 비싸질 수 밖에 없는 데다 경차 혜택까지 얻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며 기준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완성차업계는 수입 경차가 유입되면 타격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달갑지 않다.

하지만 경차 기준을 논하기 앞서 경차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 지부터 되새겨보자. 단순히 경제성을 따져 작은 차를 사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려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일본은 연료 소비 감소를 위해 가장 먼저 경차제도를 마련했다. 연비 절감 기술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던 60여년 전, 배기량 660cc이하의 경차 기준을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 자동차업계가 세계 수준의 연비 기술을 갖게 된 촉매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업계 해석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경차의 배기량 기준이 높아진 것은 실로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경차의 배기량 기준을 800cc에서 1000cc로 바꿨다. 이론상 엔진만 놓고 보면 배기랑이 커질 수록 연비는 낮아진다. 연비 기술이 뒷받침해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다. 기아차 모닝과 한국지엠 스파크의 공인연비는 각각 15.2km/ℓ, 14.8km/ℓ로 모두 에너지소비효율 2등급에 들어간다. 차체를 키운 레이는 고작 13.5km/ℓ밖에 되지 않는다.

연비 측정 기준이 동일한 국내 판매 차량과 비교해도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현행 경차 기준이 해외 경차의 수입을 막고, 오랜 기간 국산 경차의 독점시대가 계속되면서 국내 완성차업체는 수익성이 낮은 경차 개발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1리터로 100킬로미터를 주행하는 '1리터카'가 현실이 된 시대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기준은 점점 강화되고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기형적인 경차 제도를 바로 잡아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를 건져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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