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완화는 만병통치약?
[기자수첩] 규제완화는 만병통치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고은빛기자]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동양그룹의 계열사 회사채, CP(기업어음) 판매를 두고 '사기판매'라고 판결했다. 동양증권이 부실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그룹 계열사 회사채, CP를 일반인에게 팔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업의 무책임과 부도덕이 동양사태의 발단이지만 좀 더 깊숙히 들어가면 촘촘하지 못했던 규제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동양증권이 문제가 된 상품을 일반인에게 내놓을 수 있었던 데 아무런 장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룹 계열사 지원을 위한 주식취득 금지 규정이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로 후퇴했고, 이를 통해 동양그룹의 기업어음 돌려막기가 가능해진 점에서부터 촉발됐다.

심지어 2009년 당국은 동양증권의 동양그룹 계열사 기업어음(CP) 판매 문제를 발견했지만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밀려 강력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발생한 파장은 동양사태로만 끝나지 않았다. 당시 동양그룹 회사채는 'BBB'급으로 판매돼 아직도 회사채 투자자들에게는 'BBB급=법정관리 위험'의 공식이 통용되는 등 회사채시장에서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전히 AA급 회사채가 아니면 A급도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BBB급은 시장에 발도 내밀 수 없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BBB급 회사채 발행을 돕기 위해 분리과세하이일드펀드를 출시했지만 여기서도 '그나마 괜찮은' 회사채를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규제완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업황 부진의 원인을 규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동부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이 계열사 회사채를 위법 거래해 나란히 기관주의와 과태료를 부과받았다는 점에서 규제완화가 해법인지는 좀더 생각해볼 문제다. 이들 증권사는 타증권사에 일부 수수료를 떼어주는 등의 형태로 인수 물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금융당국이 이같은 위법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자가 계열사 후순위채를 일반투자자에게 권유할 수 없고, 계열사 증권을 취급할 때 인수 및 모집 등 세부 내역을 보고서를 통해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우리나라의 규제가 다른 선진국 시장에 비해 강도가 세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영업이 어려운지는 좀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금융당국자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