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전환기의 금융정책과 물가목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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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희 유안타증권 이코노미스트.

2014년 6월 2일 한국은행이 개최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교수는 ‘미국 경제성장의 종언’이란 도발적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1891~2007년 미국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이 한해 평균 2.0% 증가했으나 2007년 이후 25년간은 0.9%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다.

고든의 전망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촉발한 ‘장기 정체’(secular stagnation) 논란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장기 비관론을 반영하듯 미국 10년 국채금리는 올해 연초 3.0%에서 최근에는 2.5% 이하로 하락했고, 유로존은 디플레 우려로 독일 10년 금리가 역사적 최저치인 1.0% 이하로 하락하며 일본, 스위스에 이어 1% 미만 클럽에 가입했다.

그런데 연준은 ‘장기 비관론’을 뒤로하고 고용시장의 회복을 바탕으로 QE 종료를 선언하고, 2015년 중반에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해 기존 금리정책에 의존하는 정책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연준은 향후 경기침체로 재차 제로금리제약(Zero Lower Bound)에 직면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다. 연준 의원들의 평균 기준금리 전망은 3.75%이며, 가장 높은 전망치가 4.25%이다.

따라서, 과거 경기침체 사이클에서 기준금리가 500bp 이상 인하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준이 제로금리제약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준금리가 6.0% 이상에 있어야 한다. 연준 내부에서는 소수 의견이지만 로젠그린 보스턴 연은 총재는 다음 경기침체 때 제로금리제약에 직면하게 된다면, QE를 다시 도입하기보다는 물가목표를 2%에서 4%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한편, 3분기 국내 GDP는 전기대비 0.9%(전년동기비 3.2%) 성장해 한국은행의 전망과 일치했다. 그러나 항목별로 보면, 수출 및 투자와 밀접한 제조업이 크게 위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민간소비는 전기대비 1.1% 증가했지만, 기업설비투자는 운송장비가 줄면서 전기대비 0.8% 하락했고, 그리고 수출은 LCD 화학제품 등이 줄어들면서 전기대비 2.6% 하락했다.

국내 수출기업들이 글로벌 경기둔화와 엔저, 그리고 중국 경쟁기업의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일 추가적인 대외 충격이 생긴다면 한국은행은 추가적인 금융완화를 통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 스스로 정책수단을 소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우려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에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만일 금리를 2% 아래로 낮추어 1%대로 진입하게 된다면, 이는 사실상의 제로금리이며 대규모 외국인 자금이탈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선진국 수준의 2%대 물가를 지향해 왔다. 한국은행은 2012~2015년 중기물가목표를 2.5~3.5%로 변경하면서 중심 타겟 3.0%를 일부러 설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인플레기대가 3.0% 이상에서 고착화되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중심 타겟을 없애 인플레기대를 2%대로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선진국 수준의 2% 물가목표를 지향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왔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물가상승률이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책목표의 하단인 2.5%를 하회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금번에 물가목표 자체를 선진국 수준의 2.0%로 변경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한국은행과 정부가 선진국처럼 2% 물가를 채택하고자 한다면, 선진국처럼 제로금리정책과 QE를 사용할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목표의 중심타겟이 3.0%임을 재차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한국은행에게 상황에 따라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기 물가목표 3.0%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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