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금융의 약자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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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문 SBI저축은행 부사장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으로 우리 사회가 한결 더 안온해진 듯하다. 4박 5일간의 짧지 않은 방한 기간 미디어를 통해 교황의 주름진 턱과 흰옷으로 드러나는 그의 풍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평생을 낮은 곳에서 몸소 사회적 약자를 섬기려 애썼던 그의 삶이 몸짓 하나하나에 오롯이 투영되었다.

방탄차를 사양하고 소형차를 이용한 파격, 장애아동과 어린이의 볼에 입맞추던 배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건네던 따뜻한 위로,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사려 깊은 다독임까지….

교황은 장황하고 교훈적인 가르침보다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조용히 다가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삶의 팍팍한 현실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몸을 낮추는 자세를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닐까.

교황 방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금융 약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금융 약자는 제1금융권인 은행으로부터 소외 받고 있는 금융고객으로 통용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등급과 충분한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은행권으로부터 저금리의 대출을 비교적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고객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금융고객들은 고금리에 내몰려 저소득과 금융비용이라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금융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 바로 저축은행이다. 상호저축은행법 제1조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 조문에서 서민이란 표현을 쓴 것 자체도 이례적이다. 금융기관들 가운데 설립 취지가 서민을 위한다고 명시한 기관은 저축은행이 거의 유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저축은행은 과거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지 못했다. 업권 자체의 역량과 금융 시스템이 다소 취약했던 점에 대해 우선 고해성사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몇 년 전 일부 대형 저축은행들이 본래의 사회적 책무는 소홀한 채, 부동산 PF 등 리스크가 큰 수익 부문에만 무분별하게 뛰어들기도 했었다. 그 결과 결국 영업정지 등의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어 많은 예금자와 채권자들에게 있어서는 안 될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가 대형 시중은행과 대기업 및 금융지주 계열 카드·캐피탈사들에게 떠밀려 그 본연의 자리를 빼앗긴 점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저축은행 업계는 기본으로 돌아가 서민금융기관이라는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금융의 약자인 서민들을 위해 설립된 저축은행들이 그 긍정적인 사회적 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국이 저축은행 업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최근 내놓은 몇 가지 정책적 변화들은 서민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매우 환영 받을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모범적으로 보이고 떠난 교황은 경쟁에 몰입했던 우리 사회에 커다란 쉼표를 선물했다. 경제와 금융에도 따뜻한 온기가 서민에게까지 확산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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