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법정관리 신청] '23년 한 우물' 독(毒) 됐다
[팬택 법정관리 신청] '23년 한 우물' 독(毒)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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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택 사옥 전경과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베가 아이언2' (사진=팬택)

[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더이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 금일 최종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준우 팬택 대표는 12일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에 보낸 '팬택 기업회생 절차 신청 안내문'에서 이 같이 밝혔다. 23년 동안 IT 신화를 일군 대표 기업으로 자리해왔던 팬택이 무너지면서, 이를 둘러싼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 무선사업 '한 우물' 약점으로

이날 팬택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사에서 이준우 대표 등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1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팬택은 23년 동안 무선사업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회사다. 하지만 이같은 단순한 사업 포트폴리오는 팬택의 발목을 붙잡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회사는 지난 1991년 무선호출기 사업을 시작으로 23년 동안 휴대폰 제조만 해왔다.

팬택은 2007년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하며 1차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이 기간 동안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010년과 2011년 팬택은 스마트폰 브랜드 '베가'를 필두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LG전자를 3위로 밀어내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말 1차 워크아웃을 졸업한 팬택은 신제품 '베가 아이언' 등을 출시하며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이동통신사 순차 영업정지가 발목을 잡았다.

이통사 영업정지는 국내시장 축소로 이어졌고, 이는 팬택에 치명타 였다. 전체 매출에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비중이 10% 미만인 경쟁사들과 달리 팬택은 국내 시장이 축소되면 고스란히 매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택의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액은 78억원, 2분기에는 6배 가까이 불어난 496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3분기 영업적자 192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통 3사 할만큼 했다" vs "추가 구매만 해줬어도"

팬택은 지난달 24일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채권 1530억원의 2년간 상환유예 요청을 받아들이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팬택이 추가 단말 구매를 이통 3사에 요청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가 팬택이 요구한 스마트폰 추가 구매를 거부하면서 제품 판로가 막혔다"며 "매출이 나올 수 없으니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 역시 "팬택의 경우 여타 제조사와 달리 이통 3사가 사실상 유일한 판매 경로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반면, 이통 3사도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팬택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베가 시리즈'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고, 추가 물량을 구매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통사 관계자는 "팬택이 단말에 제조사 보조금을 최대한 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 LG 등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판매처에서 선뜻 판매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동통신 유통 전문가 역시 "지난 6일 이후 팬택 제품에 대한 제조사 보조금이 모두 사라졌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단말은 제조사 보조금이 유지되고 있지만 팬택은 없으니 판매에 탄력이 붙지 않는다"고 전했다.

◇법정관리 신청 후 두달, 운명 가를 것

팬택은 이날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회생과 청산 갈림길에 서게 됐다. 법정관리 신청 후 법원은 1주일 안에 신청기업의 채권과 채무관계를 동결하고 1개월 안에 법정관리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법정관리가 확정되면 법원이 팬택의 법정관리인을 지정하고, 경영진 재구성이 이뤄진다.

기업회생 전문가는 팬택의 법정관리 여부에 대해 "올해 3월 실시한 팬택 채권단 실사 결과, 회사의 기업가치는 3824억원, 청산 가치는 1895억원으로 나타났다"며 "법원이 존속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팬택이 향후 고강도 구조조정 등을 통한 법정관리를 졸업하더라도 경영정상화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국기업 회생협회 관계자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법정관리를 졸업한 기업들이 추가 자금을 지원받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팬택 역시 법정관리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긴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피해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생 외에도 매각, 청산 등 다양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도의 마이크로맥스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팬택의 기술력을 탐내고 있다"며 "해외 업체로 매각된다면 외산 스마트폰이 된 '베가' 시리즈를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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