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전, 그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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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지 1백일. 처음 사고가 터졌을 때의 전 국민적 충격은 어느새 세월호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듯 대다수의 일상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그러나 숱한 어린 생명들을 포함해 몇 백 명의 죽음을 불러온 그 사건의 파장으로 봐서 적어도 정치권이나 정부는 뭔가 변해도 변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과연 얼마나 변했을까.

세월호 특별법은 아직도 여`야의 쟁점사항들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국회에서 표류중이고 정부와 관료들의 태도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사고 후 1백일을 맞으며 인터넷에서 침몰 직전까지 두려움에 떨면서도 여전히 발랄하게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자체 동영상이 공개돼 다시 봐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 학생들이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현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학생들은 그 때까지도 어른들을 믿고 침착하게 기다려줬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히 기다리기를 요구했지만 그 기다림에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그 가족들에게, 또 우리 스스로에게 잊기를 강요하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일상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면면들에 민망함만 커질 뿐이다. 오직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부모들에게 다가가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있고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는 감성이 마모된 채 피해자 가족들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글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부정확한 선동에 덩달아 날뛰는 어리석은 대중의 그림자만 발견될 뿐이다.

우리 민족의 비극 중 비극이었던 6.25 전쟁 중에도 그렇게 뚜렷한 이념도 없으면서 이쪽저쪽에서 서로 날뛰던 이들로 인해 전쟁은 얼마나 더 참혹해졌던가. 오늘날 무언가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걸핏하면 ‘종북좌빨’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이들 중에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행동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무지한 이들이 선동에 날뛰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적어도 이 사회의 지도층이며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이 그와 비슷한 사고와 행동을 보인다면 매우 심각하다.

힘있는 그들이 내던지는 말 한마디는 사회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선박에 아이들을 태우고 오로지 가만히 있기만을 요구한 이 사회의 여당 중진은 국회에서 그들의 죽음은 단지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한다.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대하는 그들의 입장이란다. 물론 교통사고라면 교통사고다. 비행기 사고도 있을 수 있고 자동차, 열차 사고도 있을 수 있듯이 선박 사고도 있을 수는 있다. 불완전한 인간이 운용하는 그 무엇이든 그렇듯이.

그러나 총체적 부실의 결과로 빚어진 사고에 대한 인식치고는 참 한심하다. 그것도 부실한 행정의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할 여당의 입장이라니 답답함이 밀어닥친다. 이게 인재가 아니라 천재였다고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는 명백한 사고였기에 그런 태도를 보며 평소 모든 책임을 하늘에 돌리려 하던 행태의 뒷배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중간선거 급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국가 개조’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물론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로부터 시작된 용어이지만 지방선거 끝나고 좀 수그러드는 듯하더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시 외치는 목청이 커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 담화가 나온 이후 석 달간 정부에 의해 제시되었던 27건의 후속과제 중 실현된 것은 단 7건이란다. 그런데 정부는 그 책임을 야당에 떠넘긴다.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한 각종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당시절 여소야대 국회의 힘을 이용해 대통령 탄핵안까지 통과시킨 경험 충만한 지금의 여당이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변명이 아닐까 싶다. 정치를 전투처럼 대하며 무조건 야당의 주장을 꺾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스스로 발목 잡힌 정부 여당이 안타깝다.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정부는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지난 일은 잊어라’라고 반복하기에만 여념없는 세상 속에 우리는 그렇게 또 세뇌되어가야 마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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