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通이 부른 '문창극 사태'
不通이 부른 '문창극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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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무총리 후보의 발언 파문이 너무 커서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이 있는 국정원장 후보 문제는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보수의 특성상 치부 과정의 문제는 이제 일상화되다시피 돼온 터라 그렇다쳐도, 또 한국 보수의 친일 친미가 기본 정조라 쳐도 이번 문창극 후보의 발언은 그 수위를 넘어섰다.

인사 때마다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안대희 중도 낙마에 이은 문창극 발언 파장을 감당하기는 수월치 않아 보인다. 고집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일단 그 발언의 성격이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받을 수준인데다 외교노선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안대희 낙마에 이은 연속 낙마도 수용하기에는 대통령 리더십에 입을 상처가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정치적 타격을 입기 전에 서둘러 하차시키는 것이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상처를 덜 입는 방법이 될 듯하다. 더욱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견제하고 미국의 MD 전략 편입 요구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로서 맹신적 친일, 맹목적 친미주의자를 가까이 두기 부담스러울 것 아닌가.

줄줄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문창극 후보의 칼럼과 강연 등에 나타난 논조나 주장들은 한국 보수의 인식 중에도 극우에 편향된 인식들이다. 동시에 그의 일련의 발언들을 통해 본 한국 보수의 뿌리가 친일에서 친미로 이어진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이성계 조선의 사대주의를 굳게 붙들고 내내 기득권을 누려왔던 조선 양반, 그 중에서도 노론 당파로 그 맥이 이어진다.

일제의 조선 병합을 도운 공로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대표적 친일파들 중 90% 이상이 노론이었다는 보고도 있으니 그 맥락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일제 패망 후에는 재빨리 친미 노선으로 갈아탔지만 여전히 일제 침략의 정당성 주장을 연면히 지켜왔다.

어떻든 이번 국무총리 후보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문창극씨의 발언은 한국 보수 우익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스스로를 엘리트로 자부하는 적잖은 수의 중산층 중에서도 상위 그룹들 중 다수가 믿는 이념이고 가치관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나 학교 강의에 대해서까지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신문 칼럼은 충분히 살펴봤을 박근혜 정부의 인사팀은 그런 보수적 논조를 ‘투철한 국가관’으로 확신하고 그를 추천하고 또 대통령은 그런 이유로 그를 지명했을 것이다.

물론 교회 동영상을 보고 서울대학교 강의 내용을 듣고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적어도 정치를 생각하는 정부 여당이라면 설마 그랬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대통령과 그 인사팀이 인정했을 그 투철한 국가관이 바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일제의 대표적 만행 가운데 하나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가 필요없다고 한다. 이미 저지른 죄악에 대해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일본이 이웃이어서 지정학적 축복이라고도 한다.

복지와 분배 정의로 우리는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우리가 원시인으로 알고 배운 네안데르탈인들조차 수 만 년 전에 이미 병든 노인과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고 죽은 자에게는 꽃을 바치며 애도한 흔적들이 발견된다는 데 단군 이래 가장 잘 산다고 자화자찬하는 이즈음의 한국에서 노인과 장애인의 버스비 감면은 의존적 떼쓰기로, 보편적 복지는 공산주의로 매도하고 무상급식은 북한의 식량배급에 비교하는 국무총리 후보를 만났다.

여기서 한숨 돌리며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왜 대통령의 인사는 이처럼 매번 대중을 경악시킬까. 여당이 다수당인 국회에서조차 대통령의 인사 결과를 제대로 수용하기 힘든 사례들이 왜 이렇게 빈발할까. 여당이 대통령에게 저항해서인가.

정치권은 다만 잇단 선거가 발등의 불인 상태에서 ‘살고자 하는’ 안간힘을 쓸 뿐이다. 선거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세월호 사태를 봉합하려 그토록 애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대중 앞에 눈물까지 흘려 간신히 지지는 않은 선거를 치르지 않았던가. 이제 재보선이 코앞인데 이 부담을 떠안긴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문제라는 자성이 필요해 보인다. 진정한 국가관이 과연 기득권 보수인지를 성찰할 일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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