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과 금리 정책
환율 급락과 금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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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040원 선을 무너뜨리고 1,030원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꾸준히 진행되어 오던 추세이긴 하나 떨어지는 속도가 급해 보여 걱정이다.

주식시장을 봐도 외국인들이 주가지수를 받쳐 주지만 국내 매수세는 갈수록 힘을 잃는 모양새로 종합주가지수가 2000선에서 공방을 벌인다. 그런 장세가 환율 급락과 무관하겠는가.

그런데 금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결정했다. 신임 한은 총재가 취임하자마자 금리를 올리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결국 아끼고 보호하고 싶어 하는 수출기업들에게도 부담을 더 해줄 뿐일 것이다.

경제성장률을 지탱하기 위해 저금리를 고집하다가 결국 그 후폭풍에 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되고 원하는 경제성장 목표에서도 멀어져 갈 위험성만 커진다. 현재의 상황을 기획재정부 역시 심상치 않게 보는지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지만 좀 더 일찍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마치 제 힘과 상대의 힘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무모한 싸움을 벌이는 수준 낮은 싸움꾼의 모습만 같다. 주변국들이 일찌감치 엄살을 떨어대거나 조급한 전술적 환율정책을 펴는 걸 보면서도 너무 대응이 느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3류 싸움꾼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국가적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수출기업들의 성적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정부 입장에서는 환율 방어에 적극 나설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서서히 대응준비를 하면 될 것이라는 다소는 느긋한 입장으로 보여 지나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까지 대기업들을 위해 금리인상을 ‘악’으로만 규정하는 것처럼 보였던 정부의 입장을 보면 시장주의 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은 든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특히 한국과 같이 계획경제의 시대를 마감하고 시장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한 단계 발전하는 과정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때의 시장주의 논리가 굳이 잘못된 것으로 매도당할 이유도 없다. 사회적 미성숙에 따른 어두운 그늘이 짙기는 했었지만.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이념과 정책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그런 유효기간을 잘 파악하고 뒤따라 올 시대적 요구를 잘 수용한 나라는 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얻었지만 낡은 가치관에 얽매이거나 혹은 안주했던 나라들은 사회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발전 지체를 겪었다. 그렇게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들 간에 손바꿈을 함으로써 인류사회 전체로 보자면 역동적인 역사를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꽤 오랜 기간 묵은 가치를 경신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데 둔한 움직임을 보이며 스스로의 국제적 위치를 후퇴시켜 왔었다. 물론 사학자들은 17세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계적으로 그다지 뒤처지지는 않은 나라였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사대주의를 천명하면서 스스로 강국이 되기를 포기했고 그런 사상적 기반으로 받아들였던 유학의 사상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다보니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느낄 여지조차 말살돼 버렸다.

16세기 이후로는 국제관계에 어울리지도 않는 은혜론에 얽매어 멸망해버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며 이제는 우리가 중화사상을 잇겠다며 ‘소중화’라는 해괴한 논리를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갔다. 그 결과 우리가 문명을 전수해주던 일본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었다.

그런데 그 소중화주의의 망령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종종 횡행하곤 한다. 우리가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는데 큰 영향을 미친 국가들이 버리고 가는 가치 혹은 이념의 찌꺼기를 우리는 지킨다는 데 굉장한 우월감마저 느끼는 이들이 적잖다.

따지고 보면 유신시대가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가장 큰 이유도 시대의 요구를 억누르려다가 터진 시민적 저항의 성과를 앞질러 가로채려던 권력 내부의 배반이었지 않은가. 너무 앞질러가도 위험하긴 하지만 뒤처지면 미래는 기대할 게 없음을 그렇게 현대사에서도 보여주는데 너무 역사적 성찰을 할 줄 모르는 정부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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