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이 악담 되는 세상
덕담이 악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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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50을 맞는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으레 그러하듯 고기 좀 먹고 국수를 먹는 순서다. 생일에 국수를 먹는 관습에는 국수 가닥처럼 오래 잘 살라는 기원을 담겨 있다. 그래서 잡채를 해도 당면 가닥을 칼이나 가위로 자르지 않고 찔깃한 냉면발도 자르지 않는다. 손이나 이로 자를망정 금속붙이를 대어 자르지 않는 관습은 칼 맞을 일 없이 평안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다.

오늘도 동생의 냉면만은 자르지 말라고 주문하며 무탈하게 오래 살라는 기원을 건네니 동생 하는 말이 오래 사는 것이 무섭단다. 요즘 세상에 경제적 대비 없이 오래 산다는 것은 재앙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얘기를 동생에게 처음 듣는 게 아니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근래 들어 부쩍 자주 듣다보니 저절로 이 말의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궁구해보게 되는 것이다. 오래 살라는 말은 분명히 좋은 날 건네는 덕담이었는데 어느새 그게 악담으로 변해버린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오래 사는 게 두렵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제적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 밖에도 건강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등이 뒤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건강하지 못한 노후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곤궁을 부르고 그런 바탕에는 전통적 가정과 사회공동체의 붕괴로 인한 소외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하필 이 날 전후로 며칠 새에 매스컴에서는 유독 빈곤자살 보도가 줄을 잇는다. 빈곤 절벽에 떨어져 동반 자살한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생활고에 시달 리던 40대의 자살, 70대 노인의 생활고 비관 자살,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50대 부부의 동반 자살 등등.

그런 빈곤자살의 바탕에도 주변과 격리된 채 고질적 질병에 시달리며 가난으로 내몰린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현상도 경제적 나락에서 회생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사회복지는 제자리걸음을 넘어 근래 복지예산 타령이 이어지더니 점차 수급대상이 감소하는 상태로 변하고 있다.

복지가 사회적 주요 과제가 된 시대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복지 예산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복지예산 증가 및 누수를 억제하기 위한 지나칠 정도의 방어적 대책만 있을 뿐, 복지현장을 꼼꼼히 살필 인력의 중요성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복지 예산 총액으로 보면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복지정책을 집행할 관련 공무원의 숫자도 복지정책을 종합적으로 다듬기 시작한 이래 줄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보살펴야 할 복지정책 수혜자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사회의 고령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경제적 능력의 소실, 건강상의 악화로 인한 잦은 병고 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고도산업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로 파편화된 가족형태와 지역공동체의 붕괴를 함께 동반하게 된 현재의 한국사회로서는 고령화 자체는 끔찍한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고도 성장기 때부터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적 병증에 대한 예고는 꾸준히 있었다. 다만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보니 그런 경고를 무시한 채 사회적 대비를 소홀히 해왔을 뿐. 그리고 이제 그런 재앙이 우리 사회에 들이닥쳤다. 몇 번의 경제적 파동을 겪으며 예상보다 더 빠르게 닥쳤을 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재앙은 아니다.

이제라도 그런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여전히 복지는 사회적 재화의 단순 소비, 국가적 시혜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의식이 복지 예산 증가에 주춤거리게 만든다.

복지의 힘은 일단 경제적 능력에서 얻게 되겠지만 일을 수행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먼저 눈 뜰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부당한 복지혜택 수급을 걸러내고 각종 규제에 걸려 현실적 조건과 상관없이 사각지대로 밀려난 빈곤층을 지켜낼 수 있다.

효율 숭배사회에 한마디 건네보자. “사람을 잘 쓰는 것만큼 큰 효율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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