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최태원의 SK,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기자칼럼] 최태원의 SK,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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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현수기자]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하에서) 재벌그룹의 최대 리스크는 총수가 불법행위를 저질러 감방에 가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지난해 SK, 한화, CJ, 효성 등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상황 속에서 진행된 상법개정안 공청회에서 이처럼 말했다.10년 넘게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의 운동을 해오며 느낀 소회였다.

경영상의 큰 문제가 없던 그룹이라 하더라도 총수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순간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특히 이번 SK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형제의 실형 선고는 재벌기업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수백억원의 돈을 횡령한 최 회장이 재판과정에서 밝힌 범행의 동기는 상속지분을 포기했던 동생에게 돈을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회사 자금을 총수 일가의 쌈짓돈인냥 유용한 것이다. 

횡령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던 김승연 한화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배경이 '사익추구가 아닌 경영상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비춰보면 결국 죄질의 경중이 희비를 가른 셈이다. 

그간 나라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번번이 '관용'을 베풀었던 법원으로서도 최 회장 건에 대해서만큼은 정상참작의 여지를 두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최 회장 형제의 실형 선고가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 재벌총수의 불법행위, 특히 사익추구 행위에 대해서 만큼은 엄격하게 처리할 것을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SK그룹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 없이 과거의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판결 직후 SK그룹은 그간 '전가의 보도'로 삼아왔던 '국가경제 악영향'이라는 구절을 담은 자료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SK가 흔들리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알아서(?) 선처해달란 의미다.

SK그룹은 공식입장을 통해 "SK그룹은 선고 직후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긴급히 개최하였으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CEO들은 그룹 회장 형제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 했던 대규모 신규 사업과 글로벌 사업 분야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자칫 나라 경제를 볼모로 한 대정부 대국민 협박으로까지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 정착 노력, 글로벌 국격 제고 활동 등 최 회장께서 그 동안 중점을 두어왔던 활동들이 이번 선고로 중단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같이 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는 재계 3위 기업의 '총수 구하기'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낯이 뜨거울 정도다.

국내 재벌기업들의 이 같은 시대착오적이고 비상식적 행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재벌기업들을 감싸온 비정상적 관행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는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총수의 이익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인센티브구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직후 줄곧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왔다. 재벌기업의 경우 불법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최 회장 형제에 대한 재계 일각의 동정론과 '회사=총수'로 보는 시각의 편협함을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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