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논쟁의 그림자
국익 논쟁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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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사회에서 ‘국익’을 둘러싼 논쟁이 두 갈래로 흥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한 갈래는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라면 또 한 갈래는 ‘국익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쪽인 듯하다.

둘 다 선택의 문제일 뿐 정답이 있을 문제는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의 진정한 수익자가 누구냐를 둘러싼 논쟁은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여서 글로벌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실상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머릿속을 다 들여다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국익이라는 표현이 풍기는 국수주의적 냄새, 오랜 독재시대를 겪으며 거부감이 들대로 든 ‘권력 맘대로’ 잣대에 맞춘 국익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데 따른 생리적 부정심리도 작용하지 않나 싶다.
 
권력의 필요에 맞춘 선택을 국익으로 포장해 국민의 눈, 귀, 입을 막아버렸던 악몽이 남아있어서 국익이라는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해석하면 지나칠까. 어쨌든 그런 알레르기로 인해 인류 보편적 도덕을 자꾸 끌어내고 싶어하는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인류 보편적 도덕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이냐는 보다 근본적 의문이 든다. 물론 대다수 인류가 지지하는 도덕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도덕조차 강대국의 중심 논리에 의해 휘둘리고 농단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 또한 현실이지 않은가.

물론 흑이 백이 되고 백이 흑이 되는 거짓은 쉽사리 눈에 잡힐 수 있겠으나 교묘한 회색을 어느 쪽으로 보느냐는 선택에는 늘 기득권의 논리가 어른거리기 마련이다. 약자의 정직이 결과적으로 강자의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기제가 되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늘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혹여 그 잠자리의 불안을 더 키울지도 모를 정직과 보편적 도덕에 대한 갈망이 국익보전의 욕구보다 더 크다면 그 책임은 이 사회의 기득권층에게 물어야 한다.
 
그동안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얻은 수확물이 다수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킨 결과만을 보였기에 ‘국익’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일 테니까.

실상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점차 되돌리기 어려운 블랙홀을 향해 나아가는 형국이다. 부촌과 서민촌의 사망률 차이가 30%를 넘어섰다는 보고도 있고 그들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뛰어넘을 수 없는 철의 장막이 되어가고 있다.

서민들이 희망을 갖기 어려운 사회에서 그들의 공동체를 향한 자발적 충성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까지는 비록 나는 어렵게 살지만 자식들만은 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당장의 고생을 견뎌내는 서민들이 있어서 사회적 건강성이 유지될 수 있었고 성장·발전이 가능했다.

그 희망이 사그러들고 있다면 과연 사회적 역동성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처럼 희망을 잃어가는 그들에게 국익은 한낱 환상이며 환청일 뿐이다. 그야말로 ‘당신들의 천국’이 되고 말 터이다. 그런 서민들의 협력과 동참없이 과연 부자들의 기득권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부자들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미 집권 후반기로 들어선 참여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확보 방안 마련을 위해 정치권에 협조를 요청했다. 세수 증대없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은 별로 없을 터이니 국회와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감세만이 살길이라는 제1야당을 설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정책을 펼쳐갈지 걱정스럽다.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세수 증대는 안된다는 논리는 실상 하잘것없는 무기 하나 달랑 쥐어주고 제한된 공간에서 굶주린 맹수와 맞서게 만드는 로마시대 검투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금 우리는 그 광경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바라본다. 그러면서 또하나의 야만스러운 경기를 즐기려고 자리잡고 앉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사람들이 정치권에는 많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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