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한 사회로 가는 길
안녕한 사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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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대학생이 써서 학내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 하나가 심상찮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덕분에 “안녕하십니까”라는 평소 해오던 인사를 받고도 여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릴레이하듯 대학가 여기저기서 같은 고민을 안고 각기 자기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잇달아 붙는가 하면 고등학생이 대학생의 대자보를 퍼 날라 학교에 붙였다고 교장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이제는 중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칠레 등 해외에까지 대자보 붙이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국 수십개 대학과 공공장소에 대자보가 붙는데 이어 노조위원장, 변호사, 교수 등도 실명으로 대자보 붙이기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자보에 졸졸이 쪽지로 댓글을 다는 학생들의 숫자는 그보다 월등히 많다. 부모세대의 어른들도 젊은 학생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댓글을 단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에 실명으로 쓴 이 대자보는 80년대 대학가를 휘젓던 격렬하고 선동적인 문투의 대자보들과는 달리 매우 평이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현 한국사회를 끓어오르게 하는 문제들을 짚어나갔다. 그 때문에 오히려 전하는 감동이 훨씬 더 큰 듯하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야기된 민영화 문제며 노동자들의 파업권,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원의 “대통령은 사퇴하라”는 말에 ‘제명’ 운운하는 정치현실까지 조목조목 짚어나가되 답을 내려놓고 동의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그런 불편한 진실 앞에서 정말 안녕들 하신가를 묻고 있다.

대자보를 붙인 대학생 중에는 그동안 안녕한 척 했다, 말한마디 꺼내기가 무서웠다는 고백으로 시작해서 철도 민영화 반대를 지지하고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평화를 얘기하는 것이 왜 종북이고 빨갱이가 돼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학생은 대선 무렵부터 갑자기 ‘전라디언이냐’ ‘빨갱이다’ 등등의 악성 트윗이 갑자기 늘어 3년째 사용한 트위터 계정을 비밀계정으로 바꿨는데 국가기관이 동원됐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며 소설보다 더 한 현실을 봤다고도 했다.

늘 나빴던 상황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가 됐다는 게 지난 1년간 달라진 점이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 대부분은 서로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워 말조심을 하며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 1년”이었다고 대선 후 1년을 비판한다.

반값등록금등 청년층을 겨냥했던 박근혜 정부의 약속이 없었던 일이 됐다는 사실보다도 학생들이 보기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믿어달라고만 하는 믿을 수 없는 정권, 뭘 물어도 대통령은 그저 ‘잘하면 된다’고만 할 뿐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정권이라는 데 대해 더 답답하고 심하게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학생들은 이미 대자보 열풍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 안녕하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 안녕하게 바꿀 것인지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안녕한 사회로 전진해 나갈 수 있을까. 이제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그들에게 답해 나가야 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지금 정부는 70, 80년대식 이념의 틀에 스스로 갇혀서 비판하는 입에 재갈을 물리며 이념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는 사실 확인보다 문제제기하는 세력에 의혹의 눈길을 먼저 보내고 철도노조 파업에는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보다 불법 파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데만 여념이 없어 보인다. 최대의 이익이 예상되는 부분만 똑 떼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로 만든다면 남은 조직의 부실화는 가속될 수밖에 없고 구조조정의 위험성도 더 커지는 데 그걸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일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이익이 쏠린 주식회사와 부실한 껍데기만 남은 모회사 사이에 공정한 경쟁도 불가능하지만 그런 우열을 빌미로 다시 민영화의 깃발을 꼿꼿이 내걸 명분을 삼지 않을 수 있는가.

대학생들의 대자보에서 보듯 이미 젊은이들은 그 어떤 낡은 이념에도 사로잡히지 않았다. 다만 지금 정부가 낡은 이념의 잣대로 반대의 목소리에 대응하고 있을 뿐. 그 잣대를 내려놓고 소통을 시작하면 우리는 안녕한 사회로 나갈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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