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70년대의 망령
되살아난 70년대의 망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글을 쓰는 날이 하필 12.12사태가 일어난 날이어서인지, 아니면 이즈음의 시국이 그 때를 닮아서인지는 애매하지만 필자가 대학시절을 포함한 20대의 젊은 시절을 보낸 70년대의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요즘 어느 TV채널에선가는 1994년을 더듬는 드라마가 30대의 문화적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모양이지만 70년대의 대학가는 지금에 비해 훨씬 더 저항적인 문화가 넘쳐났던 시대였다. 문화코드로는 일명 통기타문화로 불리며 낭만적으로 포장된 시대였지만 대학사회는 한해도 강의를 다 들을 수는 없었다. 정치적 저항과 억압이 그런 낭만의 기류마저 뒤덮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위수령, 긴급조치에 계엄령까지 억압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휴교령을 넘어 휴업령이 내려지고 닫힌 대학 정문에는 탱크가 진주해 있던 을씨년스러운 풍경마저 세월이 흐르며 민주화의 성과들이 열매 맺어가자 기억이 제법 희미해졌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낭만을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고 그 때의 추억이 담긴 노래들이 TV에서, 콘서트장에서 다시 들릴 때면 편안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시국을 보며 다시 온몸이 조여 오는 듯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길거리로 탱크가 나서던 시절로까지 되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TV뉴스는 공중파에 종편까지 더해지며 종일 쏟아지는 내용이 자꾸 그 때의 방송을 되돌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릴 때면 북한도 박자 맞추듯 큼직한 사건들을 벌이거나 벌였다고 뉴스가 쏟아진다. 이래서 세상에는 각종 음모론들이 사라지질 않는가 싶기도 하다.

요즘 대학가는 좁아질 대로 좁아진 취업문 앞에서 학생들이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눈 돌릴 시간이 없다고들 하지만 70년대라고 취업이 그리 만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도성장기였다지만 그때도 소위 말하는 고등실업자들은 늘 사회적 이슈가 됐다.

다만 저학력자들에게는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공장의 일거리들이 충분히 늘어났기에 가난한 농촌 젊은이들이 서울로, 혹은 또 다른 대도시로 몰려들며 농촌 공동화의 시발점이 되던 시기였다. 하루 24시간을 2교대 근무하는 그들은 공단 주변의 한 평짜리 쪽방마저 2교대로 2명씩 총 네 명이 공동 사용하며 두 끼니를 조악한 공장급식으로 해결하고 그들 모두가 한 달에 쌀 한말로 함께 버텨나가며 악착스레 저축해 고향에 농지를 마련하고 동생들을 공부시켜가며 고도성장기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도 한몫을 해냈다.

그들의 돈이 농촌으로 전해질 때마다 똑같이 가난한 고향의 젊은이들은 대도시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며 더욱 악착스럽게 서울로 몰려들어 도시빈민의 급증을 초래했다.

그런 시대배경 속에서 대학에서는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줄을 이었고 공단 지역에서는 노동법에, 노동자의 권리에 눈떠가는 노동자들이 늘어갔다. 그럴수록 정권의 탄압은 나날이 강도를 더해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은 정권이 불러주는 대로, 혹은 앞장서서 그들을 소위 ‘빨갱이’들로 매도했다.

언론을 그토록 정부의 나팔수로 변질시킨 배경에는 한일회담을 통해 들어오게 된 대일청구권 자금이 있었다. 그 자금은 정권이 입맛대로 여기저기 기업에 할당해줬고 그 떡고물을 얻어먹은 일부 신문사는 호텔도 짓고 다른 사업에까지 발을 뻗어가며 정권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 대일청구권자금이 요즘 일본이 강제징병, 징용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다했다고 버티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요즘 국정원이나 경찰, 검찰이 예전부터 ‘빨갱이’ 딱지 붙여 몰아세우던 이들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 그들을 압박하는 데 한동안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즈음 또다시 그 버릇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 바탕에는 각급 정보기관들이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일명 ‘존안자료’가 ‘신성한 자료’로 거듭 되살아나곤 한다.

이 존안자료라는 것의 뿌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경찰들이 민족지사, 독립투사들을 불온사상범으로 몰아가던 자료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경찰에도 고스란히 계승되고 계속 덧붙여지며 남한 사회에 숱한 ‘빨갱이’들을 양산해왔다. 그걸 또 국정원도 따라 하고.그리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언제든지 끄집어내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러 대는 것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