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통계의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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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달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 21개월째 흑자행진이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9월에 비하면 월별 흑자 규모는 무려 45.4%나 늘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49.8%나 늘었다. 그에 비해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늘어난 데 그쳤다.

그 뿐인가. 얼마 전 발표된 올해의 1인당 국민소득 전망에 따르면 2만4,044달러로 그 역시 사상 최대치를 달성할 것이라고 한다.

정말 이 통계만으로 보면 한국경제는 지금 탄탄대로를 걷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정부 발표대로 잘 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가. 길거리에서 누구라도 붙들고 지금 한국경제가 좋아진다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가 '그렇다'고 답할까.

환율 덕을 보든, 안 쓰고 좀 더 벌어서 아꼈든 분명 총량적 성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국제적인 불황 속에서 이나마 성장세를 보인다는 사실은 일단 반갑게 받아들이자.

문제는 그런 성장에 대다수 국민이 별달리 실감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경제민주화를 정치적 구호로 내걸고도 여전히 불황극복의 방식을 여전히 경제적 선두그룹에서 이끌고 가야 한다고 믿는 정부로서는 이런 국민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상위그룹에게 쏠린 소득증가분이 아직 하위계층까지 흘러가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경제적 여유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성장주의자들의 고정관념으로 보자면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회적 재화는 물과 달라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기화하는 성질이 더 강하다. 그런 성질이 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이유가 되고 진실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양극화의 심화는 사회적 불만을 키우는 정치적 위험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사회적 재화의 원활한 유통을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경제성장의 정체를 초래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어 상위 1%가 99%의 재화를 독점한 사회에서 상위 1%의 국내 지출은 과연 그 99% 중 몇%가 될까를 상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어떤가.

최근 통계청이 신지니계수를 발표했다. 좀 더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새로 산정한 신지니계수는 종전 계수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평균 정도 수준이라던 한국이 34개 회원국 중 여섯번째로 높은 수준이 됐다. 지니계수든 신지니계수든 높은 수치가 나왔다는 것은 어쨌든 불행한 결과다.

완전평등을 의미하는 0과 1인 독식의 1 사이에서 그 어느 극단도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0에 가까운 사회가 안정된 사회로 이해될 뿐.

이 계수가 0.4를 넘으면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은 0.353라고 한다. 0.3만 넘어가면 일단 그 사회는 긴장해야만 한다.

물론 OECD 회원국 평균치도 2010년 기준 0.314로 전지구적인 위험신호가 발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 한국은 매우 위험한 단계로 나타나고 있다.

사상최대 경상수지 흑자, 사상최대 가계흑자, 사상최대 GDP 전망까지 다 달콤한 소식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결코 달콤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최면에 걸리고 세뇌되어 잘 되고 있다고 믿는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각이 살아있는 이들이라면 지금 피부로 느껴지는 고통을 달달한 정부발표 자료로 달랠 수 있을까.

중산층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신지니계수의 등장과 함께 물거품이 될 것 같다. 이제까지 눈속임만 같던 통계방식을 바꾸고 보니 한국의 중산층은 65%가 아니라 58%로 줄었단다. 물론 그 58%조차 자신을 중산층으로 믿고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중산층이 무너져가는 이런 구조가 심화되는데도 국가경쟁력을 높여갈 수 있을지 정부 스스로 쉼없이 반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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