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연금과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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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동기자] "내가 낸 연금을 어디에 쓰는 거냐는 가입자들의 항의 전화가 많습니다. 수익률이나 신경 쓰라는 말씀인데 참 송구스럽습니다"

국민연금 한 직원은 지난 2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기금운용 발전방향' 발표 이후 이같은 항의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발표된 발전방향에 따르면 보유주식에 대해 100% 의결권을 행사하고 경영성과나 지배구조 문제 기업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별 관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경우 유럽 등 해외 연기금과는 달리 주주총회에서조차 의견을 못내는 '순둥이'라는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이같은 방침이 우려를 사고 있는 이유는 '블랙리스트'가 '주주가치'에 정확히 부합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에 소속된 정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독립성을 갖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런 구조적 한계에서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직접 손보겠다는 국민연금의 방침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시총대장주인 삼성전자의 7.43%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다. 그 외에도 현대차 등 굵직한 기업을 포함해서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가 248곳이 넘는다.

만약 국민연금이 정략적 목적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재계 전반에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가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의 '블랙리스트'는 자칫 경제민주화의 대체수단으로 활용될 소지도 충분하다.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안을 입법해 국회와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이 국가의 재원이 아닌 가입자들의 노후자금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주된 역할도 기금을 제대로 운영해 가입자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이다. 의결권 행사는 기금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보조수단에 그쳐야 한다.

국민연금이 거대 자본을 무기로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일 경우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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