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광복절 경축사를 보며
역대 광복절 경축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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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는 여느 해보다도 관심을 모았다. 취임 첫해의 광복절 경축사가 통상적으로 향후 국정운영 기조를 반영한다는 점도 있지만 광복절 하루 전에 극적으로 타결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계기로 한 남북관계와 더불어 극우 경향이 나날이 짙어져가는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 것인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북한이나 일본 등 모든 당사국들도 촉각을 세울 시기였기 때문이다.

경축사 내용은 평소 박근혜 대통령의 어투를 반영하듯 크게 예리한 표현은 없어도 나름대로 요모조모 내용을 담고 있어 심심하지만 그런대로 구색을 갖췄다는 느낌은 든다. 특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한만을 대상으로 삼기보다 동북아 국가 모두를 향해 확장된 인상을 준 것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대목은 단군세기의 저자인 행촌 이암선생의 말을 인용한 것. 고려 말의 대학자이지만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대중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행촌의 역사에 대한 정의를 들고 나온 대목에서 국사교육 강화가 단순히 세뇌교육식의 현대사 교육을 지향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주목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부가 된 연설문 라이터의 공에 불과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위안부 문제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고 국내의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아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가 싶어 안타깝다.

과거 10년을 돌아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 60주년 경축사에서 그 전까지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말하고 다짐하는데 중점을 두던 일종의 관례를 깨고 어두운 이야기를 먼저 꺼내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배경을 조금 길게 얘기하며 지배세력의 독선과 그로 인한 분열과 대립, 그리고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지만 청산되지 못한 과거와 되살아난 독재체제의 잔재를 짚어간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한 올바른 역사청산을, 일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진심없는 반성과 알맹이 없는 사과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치욕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면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당당하게 세계질서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국민으로 살게 하자고 강조한다.

이후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행태에 관해서도 노대통령 스스로 직접 작성했다는 담화문을 통해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이라고 정의한다. 말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아베 총리의 말에 따르면 일본 순시선의 무단 접근에 노대통령은 위해사격명령을 내렸고 그에 따라 해경 경비정이 막아서자 일본순시선이 총격전을 우려해 물러났다고 한다.

그로 인해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극우 인사들은 ‘세계 제일 부자인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북한과 친구가 되겠다는 것이냐’며 비꼬아 우리 사회 분열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광복적 경축사에서 한일 문제는 널뛰기를 한다. 취임 후 첫 광복절에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나 국내의 친일청산 등 과거사 청산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있던 임기 마지막 해에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하고 뒤이어 광복절에는 일본과의 과거사에 얽힌 사슬이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지체시키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양국 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인권문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경축사의 어조가 강경해진다.

직전까지의 발언과 너무 급변한 그런 말들로 인해 진정성이 의심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어떻든 올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기간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드러났다. 강경한 표현이나 구체적 사실 적시를 하는 대신 우회적 표현을 즐겨 하는 그의 어법에 갈증이 느껴지고 그런 표현을 떠받들어주는 국내와 달리 국제관계에서 이런 어법이 통할지도 의문스럽지만 일단 정해진 원칙을 밀고 나가는 뚝심을 기대해보기로 하자.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동아시아의 영토 갈등에 대해서도 단지 신뢰만을 말하는 것은 미덥지 않고 ‘군인의 딸’로 자란 그에게 통일 이후의 동북아 문제까지를 염두에 둔 청사진을 기대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지만 아직은 그래도 기대를 접을 정도는 아닐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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