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원칙 잃으면 다 잃는다
경제정책, 원칙 잃으면 다 잃는다
  • 홍승희
  • 승인 2003.03.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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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지금 연타로 강펀치를 맞으며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내적외적 변수들이 겹쳐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경제정책이 갈팡질팡하며 정권 출범 초기부터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시장개혁, 산업구조 개편, 기업 구조조정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재벌들은 이 기회에 모든 개혁기조를 뒤엎고 원점으로 돌리고자 하는 노력을 집요하게 펼치고 있다. 또 일부 관료들은 종종 그같은 재벌들의 논리 위에서 춤춘다.

당장 펀더멘탈에 훼손을 초래할 위기상황이라면 정책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책은 제대로 중심을 잡아줘야 된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핸들을 함부로 꺾어서는 안된다. 섣불리 핸들을 확 꺾다가는 대형참사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설사 차선바꾸기를 하더라도 전후좌우 상황을 살펴가면서 조심스럽게 조정해야 한다.

정책이 미세한 조정 대신 차선을 넘나들며 갈짓자 행보를 한다면 정책현안들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여만 갈 뿐이다. 그런데 요즘 경제팀의 정책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음주운전 차량을 뒤따라가는 듯 조마조마한 심정이 된다.

이런 현상이 경제부총리 한사람의 성향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금융산업 정책의 상당 부분이 기업연구소들로부터 그 논리적 근거를 제공받아온 전례에 비춰볼 때 인사 뒤끝의 정책이란 게 통상 그러할 법하다. 게다가 금융당국이 그동안 해온 타성으로 정책을 펴나가도 신임 관료들로서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걸기에 역부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손발 맞추기에도 힘겨운 시점에 안팎으로 연속 강펀치를 맞고 있으니 갈팡질팡하는 것을 웬만큼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 기조가 흐트러지면 향후 5년간 경제정책은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야 하는데 현재의 흔들리는 정도는 이미 그 일관성이 지켜질 수 있을 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임기응변식 대증요법도 일정 범위 안에서는 필요하다. 문제는 중심을 잃고 상황에 끌려다니며 대증요법을 남발하다보면 개혁해야 할 산업 체질이 더 악화돼 있어 치료불능 상태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유능한 의사는 환자의 몸상태가 회복되는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며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대증요법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설사 대증요법을 쓰더라도 일회성에 그치고 곧바로 몸상태를 제대로 돌려놓는데 주력하는 게 옳다. 대증요법의 강도가 너무 높아지면 환자의 몸이 그런 강도높은 처방에 의존적으로 변해 몸이 자연치유 능력을 상실하게 돼 근본적인 회복이 불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과 수술 등의 처치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대의학도 실상은 인간 신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모든 경제정책도 기업과 시장의 그같은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모아야 한다. 물론 금융정책도 금융사들의 자생능력을 높이기 위해 되도록 응급처방은 피해가야 한다.

과거 증권시장이 많이 왜곡됐던 시절에는 거의 주기적으로 증시 안정대책과 규제조치가 번갈아 나오곤 했다. 그 당시 증권업계는 툭하면 정부대책이 나오길 목을 빼고 기다렸다. 어쩌면 현재 증권사들의 허약한 기초체력도 그 후유증일지 모른다.

다른 금융업종이라고 크게 다를리는 없다. IMF 구제금융 하에서 은행들이 치른 그 호된 구조조정도, 설립 10년도 안돼 무더기로 퇴출된 생명보험사들도 결국 그런 과보호 정책이 길러낸 허약체질의 결과일 수 있다.

정책은 좀 더 긴 호흡으로, 전술적 대응보다는 전략적 개념을 갖고 개발되고 집행돼야 한다. 더 이상 우왕좌왕하는 정책으로 경제주체들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을, 진정으로 안정된 경제팀의 모습을 기대한다. 덧붙이자면 그 안정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적 자세를 변호하는 용어가 아니라 일관된 기조로 진행되는 미래지향적 정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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