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세주의의 꿈과 현실
개세주의의 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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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부가 세수 확대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출발 신호로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통해 박근혜정부의 향후 조세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핵심은 소득세 징수를 늘리고 법인세율을 인하한다는 것이다. 소위 강부자 정권으로 불린 이명박 정부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조세정책의 ‘우향우’ 소리가 우렁차다.

우향우든 좌향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다. 염려되는 것은 지금의 우향우 구령소리가 단지 박정희시대의 향수를 넘어 그 시대 경제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불균형 성장론의 재탕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농업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며 기업에 몰아주기를 해서 키워낸 재벌들이 GDP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또 한 번 기업 몰아주기로 나아간다면 한국사회의 내부적 불안정이 가속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18개 재벌의 GDP 비중이 2003년 기준 64%에 달하지만 그 기업 수는 전체의 1/10,000에 불과하다는 발표도 있었는데.

가뜩이나 고용 없는 성장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가난한 서민들까지 포함한 개개인의 주머닛돈을 긁어 기업에 몰아주기를 하면 우리는 정말 잘 살게 될 것인가.

그런 걱정은 무시된 채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23일 공청회에서 안종석 선임연구원의 주제발표를 통해 소득세에 대해서는 ‘효율성이라 쓰고 증세라 읽히는’ 개편 방안을 내놨다. 소득간 과세형평성 제고를 위해 아무리 소득이 적어도 단 한 푼이라도 세금을 내는 개세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의 ‘아무리 소득이 적어도’ 수준이 기초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근로소득까지 겨냥한 것이라면 참으로 잔인하다. 아무리 지금 소득세를 내지 않는 서민들이라 해도 이미 부가세를 포함한 수많은 간접세를 물고 있는데 마치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 한 푼 안낸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더욱이 간접세는 형평성 좋아하는 정부가 원하는 대로 부자든 가난한 자든 공평하게 물리는 것 아닌가.

개발독재 시절, 쌀값을 묶어두어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고 그렇게 더 곤궁해진 농가의 어린 소녀들은 정부 지원 팍팍 받는 수출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팔고 쪽방에서 소금밥을 먹어가며 저축을 해서 논밭을 잃을 고향의 부모에게 송금함으로써 농촌 공동체와 더불어 농지가격의 급속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물론 몇 년 지나지 않아 도시 주변 농지들은 농지 존속을 위한 법의 강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투기 붐에 껴묻혀 들어가며 더 이상 식량 생산기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해가기 시작했다. 영문 모르고 땅을 비싸게 사겠다는 도시인들에게 농지를 넘긴 농민들은 삽시간에 그 돈을 까먹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감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이 더욱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정부의 각종 개발정책으로 도시의 확장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업은 나날이 생산 효율 낮은 천덕꾸러기 산업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런 시절이 지금 되돌아오려 한다. 물론 농촌은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한 상태고 이제 밥술이나 먹게 됐다고 안심하던 장삼이사들이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인줄만 알고 덩달아 춤추다가, 혹은 무슨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은 기대로 박수 치다가 주머닛돈을 털리게 생겼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자며 개인 소득세는 늘리고 법인세는 낮춘다는데 그 근거 삼는 비교치들이 참 묘하다. 우리나라 법인세율 24.2%는 OECD 회원국 평균 25%와 비슷하지만 지난해 GDP 대비 법인세 수입 비율은 3.6%로 OECD 회원국 중 6위이니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뒤집으면 개인 소득은 비중이 낮고 법인 소득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이지만 그런 쪽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법인세율이 많이 높던 미국이 35%에서 28%로, 일본은 30%에서 25.5%로 낮췄으니 우리도 낮추자 한다. 그 낮춘 비율보다 우리나라는 더 낮다는 점도 무시하면서. 참 편리한 시력을 갖고 복고 타령을 부른다. 그러면서 ‘복지 확대’라는 허울로 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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