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헌 의원 ⑥공적자금 낭비 사례-제일은행 헐값 매각 2
이성헌 의원 ⑥공적자금 낭비 사례-제일은행 헐값 매각 2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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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8년 12월 31일 제일은행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99년 1월 5일부터 99년 5월 2일까지 뉴브리지와 매각 조건을 협상했다. 그런데 양쪽 다 별 소득이 없이 배타적 협상기한을 만료했다.

뉴브리지와 양해각서상 배타적 협상기간이 종료했다는 이야기는 양해각서의 효력이 상실됐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뉴브리지와의 매각협상을 진행했는가가 의문이다. 뉴브리지측과의 배타적 협상기간이 종료했다면 새로운 협상 대상자를 찾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도 말이다.

뉴브리지가 배타적 협상기간인 5월 2일을 넘긴 이후 제일은행은 독자적 회생프로그램을 만들어 99년 5월 13일 경영정상화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제일은행이 제출한 경영정상화계획서를 금감위는 승인을 하지 않았다가 99년 6월 25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 감자명령 및 예보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감자직전까지 공적자금 2조 4천억원이 들어갔고, 한국은행 특별융자와 차입금 2조8천억원이 들어가 있는 등 총 5조원이 투입됐다. 이 상황에서 금감위의 감자명령은 기존 투입된 5조원의 공적자금이 공중 분해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금감위는 이에 대해“매각협상시 가격조건을 둘러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고, 정부에선 정상적인 영업을 못해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있어 자기자본 부족분을 메우고, BIS비율도 높혀 크린 뱅크를 만든 뒤 제 값받고 팔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재경부와 금감위는 “기존 부실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서 매각과 관계없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므로 원활한 매각협상을 위해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어 제일은행측의 독자적 경영정상화 계획의 묵살과 부실금융기관 지정, 감자명령이 매각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음을 시인하고 있다.

이같은 제일은행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까닭에서 이뤄진 것이고, 공적자금 투입은 제일은행 매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즉 매각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절차를 밟은 것으로 해석된다.

1999년 7월 1일 금융감독위원장 명의로 예보와 자산관리공사에 <금감위 의결사항에 따른 조치통보>라는 공문을 보내 BIS비율 10% 달성에 필요한 금액지원과 감자조치 방법, 부실채권 매입 산정률을 정해 놓았다.

이에 따라 예보는 4조 2천억원을 출자, 자산관리공사는 부실채권 규모 4조5천379억원을 8천970억원으로 사후 정산없이 확정, 매입했다. 이로써 약 5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에 따라 제일은행은 경영정상화를 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게 됐다.

실례로 제일은행의 여수신이 많아 청산시킬 수 없다던 문제의 여수신 규모를 보면, 99년말 수신 15조6천980억원, 여신규모 12조8천880억원으로 줄고 있었고, 감자조치와 출자, 부실채권을 자산관리공사가 매입한 이후인 99년말 무수익여신 260억원에 불과했다.

제일은행이 건전화된 이 시점에서 해외에 매각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은행이 추가 감자와 출자로 은행이 건전화됐고, 여수신 규모도 줄고 있었는데도 매각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만일 매각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있었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따라서 정부의 제일은행 매각은 특혜 아닌 특혜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우선 정부는 배타적 협상 시한을 넘겨 사실상 양해각서가 파기됐음에도 정부가 나서서 양해각서 준수를 위해 뉴브리지와 재협상에 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안맞는 얘기다. 협상 시한을 넘겼고, 제일은행은 독자 생존을 모색했으며, 금감위는 뚜렷한 원칙없이 제일은행의 독자 생존을 가로 막았던 셈이다.

특히 협상 시한이 넘겼다는 점에서 정부와 뉴브리지가 맺은 양해각서는 자동 파기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따라서 이후 매각절차를 밟을 때는 새로운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어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뉴브리지와의 재협상에 집착했다.

최근 각 언론에 드러난 당시 참여자들의 증언을 참조하더라도 정부의 이런 모순된 태도는 문제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이랬다. “정부는 약 5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제일은행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약 5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정상화시켜 놓은 후 매각을 했다. 정부는 99년 7월 1일 매각에 합의하고도 이견이 있어 투자약정서를 99년 9월 17일에나 맺을 수 있었는데 투자약정서에는 양해각서에서 합의한 풋백 옵션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줬으며, 3년이 지난 뒤에도 워크아웃 채권에 대한 풋백 행사를 가능케 했다.”

정부는 뉴브리지와의 매각협상에서 제일은행이 매각된 후에도 원활한 영업을 유지케 하기 위해 99년 9월 17일 시점에 시행중인 금감원 기준에 의한 부실여신을 제외한 자산을 매각시점에서 뉴브리지 측이 모두 인수하도록 합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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