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물과 전시작전통제권
대통령 기록물과 전시작전통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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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두 사람 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이 실종됐다. NLL 포기 발언이라는 폭탄을 제거할 기록의 실종으로 인해 여야는 더욱 시끄럽다.

국가기록원에 정본 파일을 넘겼다는 민주당과 파일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몰아붙이는 새누리당 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있니 없니 공방을 주고받는다. 그런가 하면 있는 것을 못 찾는 것 아니냐, 은폐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등의 의구심도 불쑥불쑥 솟구친다.

보안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국가정보원이 앞장서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슬그머니 흘리다 못해 아예 전문 공개한다고 나서며 시작된 작금의 사태는 우리가 지금 으스스한 공안정국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구나 싶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런 우려가 단순한 노파심이 아니라는 방증이 속속 쏟아져 나온다.

모두의 관심이 대통령 기록물에 쏠려있는 동안 그 못지않은, 어찌 보면 더 큰 사안일 수도 있는 문제가 슬그머니 새어나왔다. 국방부의 입을 빌어 이틀이나 늦게 발표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요청이 그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해 문민정부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을 되찾고 참여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를 못 박은 역사적 발전이 다시 뒷걸음질을 시작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1차 연기한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최근의 미사일 위기를 구실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를 다시 연기해달라고 미국에 사정하고 매달리는 모양새다.

물론 미국 측은 이런 요청에 딱한 사정 봐주듯 응할 것이다. 우리 쪽에서 사정을 하고 있으니 미국은 또 방위비분담금 문제 이상의 여러 가지 잇속을 챙길 것이다.

그런데 작전통제권을 되찾는 문제에 앞장 서야 마땅할 군이 전혀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것이 참 묘하다. 일단 지휘관이라면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려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데 한국의 장성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달고 있으나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 정권 시절보다 지금이 더 국방력 면에서 밀리는 처지인지 의아하다.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정권하에서 스스로 핵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국방 역량에서 결코 북한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군에서도 알고 정부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해교전 당시에도 이미 우리가 공격을 당한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쪽의 피해가 월등히 컸을 만큼 군 전반의 장비 수준에서 우리가 우위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박정희 정권에서도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환수하고자 노력했던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바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한국적 보수 회귀의 실상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런 민망한 사건들을 덮으려는 듯 검찰이 한두 개 재벌을 시범케이스로 족치고 있다. 검찰이 열심을 내고 있지만 아쉽게도 국정원의 정보 유출과 그로 인해 촉발된 NLL 논란, 국가기록원의 기록 실종 사건으로 대형 매스 미디어들이 도배되면서 빛바랜 실적으로 남을 듯하다. 아무래도 싸움 구경하기에는 정치권 싸움 만 한 게 없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온 국민이 이런 큰 싸움 구경에 정신 팔린 사이에 한구석에서는 슬그머니 실속을 챙겨보려는 시도도 벌어진다.

은행 수수료를 올리려던 금융감독원도 그런 축에 속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방안이 은행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중도상환수수료율 인하를 검토하는 금융위원회와도 충돌하고 실질적 수혜자가 될 은행들의 반응도 시원찮으니 슬그머니 한발 뒤로 뺀다고 한다.

당초 수수료 모범규준을 연내 제정하면서 반토막 난 은행권 수익 보전을 위해 수수료 현실화를 추진하려다가 뒤늦게 수수료를 인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는 모양이다.

아직도 여전히 수직적 사회의 경직성이 몸에 밴 한국사회에서 여당도 검찰도 또다른 권력기관들도 모두 대통령의 심중을 살피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런 와중에도 잠시 잠깐 틈새만 보이면 재빨리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 물난리 난 현장에서 떠내려온 물건 챙기려 눈 벌건 모습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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