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공간 소멸시대의 애가
수다 공간 소멸시대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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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이 지엄하던 왕조시대에도 사적 공간에서 왕을 안주삼아 헐뜯는 이들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안 보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흉본다”가 아닐까.

그렇게 모여앉아 흉보고 헐뜯는 일을 대체로는 알아도 모르는 체 넘어가는 것이 권력 가진 자들의 미덕이다. 대중들은 그런 힘없는 수다로 답답한 가슴을 잠시나마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적인 흉보기가 사법적 대상이 된다. 나이 든 세대들은 얼굴 맞대고 모여앉아 수다를 풀어낸다면 젊은이들, 그 중에서도 개인적 시간을 내기 어렵도록 바쁜 젊은이들일수록 지인들과도 얼굴 맞댈 기회조차 갖기 어려우니 스마트폰 잡고 짬짬이 수다를 풀어낸다.

게다가 계급, 계층, 학연, 지연에 얽매인 관계의 모든 선입관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가슴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들이 뜻을 따라, 취미나 관심을 따라 만나는 공간 속에서 답답한 속엣말들을 털어놓는다. 그게 요즘 말거리 많이 만들어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즉 SNS다.

그런데 대단한 대한민국 상위 1%들은 그런 SNS를 대중 미디어로 간주한다. 새누리당은 SNS미디어본부를 꾸려 지난 대선을 치렀다. 선거관리위원회나 법원은 SNS에 올린 정치적 소신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몰아간다. 아마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국정원의 인터넷 댓글 소동도 나왔을 성싶다.

불만을 풀어내는 수준의 불평불만 늘어놓는 일이 법적 제재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유신독재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위 막걸리 반공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잘 아는 이들끼리의 술자리에서 10월 유신을, 독재정치를 비판하다 반공법 저촉으로 끌려가 고생하는 일이 속출했던 시절이었다.

정치적으로 몹시 암울했던 한때의 블랙코미디로 그치는 줄 알았던 그런 일이 요즘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정치판에서만 SNS로 나누는 속엣말들이 문제가 되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에게까지 퍼져나간다.

가족도, 친구도 만날 시간이 부족한 운동선수들이 SNS 상의 수다를 통해 답답한 속엣말을 털어놓았다가 졸지에 ‘패륜’ 딱지까지 붙는다. 선수가 아는 이들에게 감독에 대해 불평하는 게 패륜에 이르는 죄인 것도 꽤 우스운 일이지만 축구협회가 나서고 매스미디어들은 또 사냥감 쫒는 사냥개마냥 선수 하나를 짓밟아놓는다.

SNS를 대한민국 권력들은 공적 공간으로 간주하지만 SNS는 사람간의 인간적 교류가 현저히 줄어드는 현대인의 사적 수다 공간이다. 그런 공간 하나 남겨놓지 못하는 사회의 숨막히는 통제가 미래니 창조니 하는 말과 어울리기나 하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근래 들어 한국사회를 서양의 중세시대 교회처럼 극도의 경건주의로 몰아가려는 보수언론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면 그들의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중세시대 교회들이 유럽 사회 전체 대중에게 극도의 경건주의를 강요하는 동안 교회의 권력은 극대화됐고 동시에 그 역사 이래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시절을 보냈다.

그런 권력에 저항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인간을 신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계몽주의 운동이 시작됐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물론 그 종교개혁을 통해 등장한 개신교도 요즘 한국사회 대형교회들의 세습 행태를 보며 역사의 반복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지만.

어디에도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사회에는 대중을 세뇌시키려는 권력에 의해 왜곡된 일방적 정보만이 흐르다 고여 썩게 된다. 경건주의의 이면에 권력의 타락이 자라나듯 일방적 정보의 홍수 역시 권력의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절 대중들은 무기력감에 빠져든다.

현대 한국사회에 우울증과 홧병이 넘치는 이유도 그런 사회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홧김에 저지르는 묻지마식 범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을 시도해봐야 할 일이다.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인형같은 스타상품에 기대는 한류가 한계에 이를 때 ‘싸이’ 같은 돌출형 가수가 맥을 이어감으로써 한류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현상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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