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 없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
  • 홍승희
  • 승인 2005.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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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어디고 또 어느 때고 사건 사고 없는 세상은 없다. 그러나 산업화와 더불어 인구 과밀형 도시들이 늘어나면서 그 사건 사고들 역시 인구 밀집 정도만큼 집중돼 나타나다 보니 요즘 유난히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는 양 착시현상도 발생한다. 100명이 사는 세상에서 한 건 일어나던 사고라면 1만 명이 사는 세상에서는 100건이 아니라 1천 건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발하는 사건 사고들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에는 무언가 그럴싸한 이유들을 갖다 붙이는 일이 또한 당연시되고 있다. 패륜적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심리학자부터 교육전문가, 정신과 의사들까지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서서 그 원인을 진단해낸다.
물론 같은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템에서부터 고쳐나갈 부분을 찾아내 고치려는 자세가 그르다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범죄의 원인을 매양 사회적으로만 찾아내려 한다면 인간 개개인의 책임의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하찮고 쓸모없는 듯 보이게 된다.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인생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그 개인이 질 수밖에 없다. 보다 나은 환경, 가능한대로 평등한 경쟁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사회의 책무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기업들의 생존 양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내수침체니 장기불황이니 하며 온 사회가 곧 죽을 듯 엄살을 부리고 있는 와중에도 분명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 급성장하는 기업들은 있다. 반면에 호황기에도 부도나는 기업, 경영애로를 겪는 기업들은 있기 마련이다. 환경이 중요 변수이기는 하나 절대 상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불황기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는 기업들은 모두 첨단산업 분야의 기업들인가. 그건 아니다. 꾸준한 성장을 하는 기업들의 일반적 특징은 늘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되 너무 앞선 기술에 목매달기 보다는 사회 환경 변화, 기술추이 등을 남보다 한 발만 앞서서 대비하는 보수적 경영을 한다는 것이다.
두 세 발 앞서 나가는 벤처기업들은 오히려 불황기를 헤쳐 나갈 기초체력이 부족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첨단기술 제품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마케팅의 위험성이 그만큼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불황에 강한 기업 체질의 또 하나 특징은 다른 어느 경쟁제품보다도 소비자들에게 소위 ‘원조’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는 장수 브랜드를 잘 유지, 관리해 나간다는 점이다. 환경이 불안정해지면 소비자 역시 익숙한 제품에 먼저 손이 가고 선택에 모험을 줄여나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래도록 유지된 브랜드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유통망 사업자를 늘 변덕스러운 소비자 대하듯 꾸준히 관리해 나갈 줄 아는 기업의 경쟁력이 불황기에 오히려 더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흔한 말로 ‘소비자는 왕’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를 왕으로 여기는 기업은 많지 않다. ‘왕’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권력이어서일 리는 없고 단지 선택할 권리를 가졌으되 매우 변덕스러워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힘든 소비자의 특성을 빗댄 표현일 터이다. 그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여러 마케팅 전략을 세우듯 유통망 사업자들에게도 꾸준히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들이 상황이 나빠졌을 때에 남들보다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까지 국내 기업들은 스스로 침체된 경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기 보다 정부가,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주길 기대하고 응석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물론 아무 일도 않고 손놓고 있었을 리는 없다. 다만 유럽의 혁명기에 신흥 부르조아들이 그 변화의 바람에 적극적으로 올라타고 신분 상승을 이룰 때 하루하루 룸펜으로 몰락해가던 귀족 자제들의 모습을 일부 대기업들의 행태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게 문제다.
오랜 세월 보호받아온 습관이 쉬이 고쳐지기 힘들겠지만 이제 또다시 ‘계획경제’라는 유모가 되돌아 올 가망은 없잖은가. 이 점을 자각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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