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금융의 책임
두산과 금융의 책임
  • 홍승희
  • 승인 2005.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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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오너 형제간 싸움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이전의 다른 그룹에서 나타났던 단순한 형제간 재산 다툼과 달리 이번 두산그룹의 경우는 거듭되는 비리 폭로와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그 파장이 더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기업 자금을 개인 주머니 돈처럼 여기는 재벌 행태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까발리려고 나서는 이들이 없기에 단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격하는 쪽에서 거푸 감춰뒀던 비리를 들춰내는 통에 막연히 느끼기만 해온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일면 관전자 입장에서 흥미진진한 감도 있다.

그런 가운데 드러난 우리 사회의 그림자 하나가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금융기관의 모습일 성 싶다.

미성년자에게 몇 십억씩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서민들로선 단지 놀라운 정도를 벗어나 금융계에 대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두산그룹이 보증을 섰다고 했다.

그런데 그 두산은 당시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유상증자를 단행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 두산이 보증을 서서 오너 일가가 어린 아이들까지 총동원돼 은행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두산은 유상증자를 해 부채비율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두산 주식가치도 올랐을 터이니 지분 늘려 기업지배력을 높이고 오른 주가는 고스란히 오너 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세상에 그처럼 쉽게 돈버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더 파렴치한 것은 그들 오너 일가의 은행 이자까지 기업 자금에서 물어줬다는 것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가만히 앉아서 큰 돈 벌고 게다가 자녀들에게는 상속세도 없이 합법적인 상속이 이루어졌으니 그냥 일석이조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딘지 미진한 느낌이 든다.

재벌들의 관행화된 행태는 또 그렇다 치자.

도대체 서민들에게는 높기만 한 은행 문턱이 저들에게는 어찌 그리 낮은가.

일반적으로 서민들이 대출을 받자면 일단 가장 확실한 담보라고 은행이 인정하는 아파트를 내놔도 일정 소득이 증명되지 않으면 담보인정비율이 야박하리만치 낮다.

그런 서민들의 박탈감을 키우는데 은행이 일조하고 있음이 이번 두산그룹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래서는 정책 당국이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염려하는 일이 전혀 현실과 맞질 않는다.

경영권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경영권마저 장악하게 되면 그야말로 사금고 밖에 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봐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하기는 지금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가지고 우물쭈물하는 모양새를 보면 공공성의 책임 정도가 그보다 낮은 시중은행들의 그런 이중적 태도는 차라리 별거 아니라 할 지경이다.

부동산 거품이 계속 걱정되는 상황인데 미국보다 낮은 금리를 고수하는 핑계는 여전히 ‘경기’다. 돈이 금융권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투기시장을 휩쓸고 다니는데도 ‘저금리=경기진작책’의 미몽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저금리 상태에 따른 우려는 고작 해외 자본들의 이탈 정도이고 아직은 금리차가 크질 않아 당장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이 낮다고 안심시키고 있다.

당국의 예상대로 당장 한국 시장에 들어온 돈이 일시에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유입될 자금들, 그리고 일단 한번 빠져나간 자금들은 지금의 금리구조에서 더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서서히 해외 자금이 줄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에서 또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시장을 뒤흔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이제까지 정책 당국의 운전 솜씨는 늘 그랬다.

갈짓자 걸음의 폭이 커지다보면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취객처럼 심하게 비틀거린 게 어디 한두번인가.

물론 미국의 경우 지금은 물가 때문에 인위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지만 내년 상반기 경에는 개입을 줄일 듯이 얘기하고 있으니 미국 금리가 마냥 오르기만 하지는 않겠지 싶다.

허나 윽박질러 가치를 높여 놓은 위안화의 역풍이 미국 시장의 물가에 어떤 자극을 줄지 또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때도 FRB가 손을 놓으리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금융의 영향력은 국가 경제·사회의 근간에까지 미치는데 금융계 스스로는 그 힘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고작 서민들 앞에서만 목에 힘주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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