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아일랜드의 한국인들
버진아일랜드의 한국인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위스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까지 한국인들의 자금이 몰려간 사실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를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현재 2개 현지 금융기관에서 단순 확인된 한국인 숫자만 70명이라고 했다.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도 있을 수 있고 다른 금융기관에 예치된 자금도 더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버진아일랜드 나아가 케이만군도, 버뮤다,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세계 도처의 조세피난처로 몰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중에는 해외투자 명목으로 대기업이나 국내 부호들이 조세피난처 4곳으로 돈을 보낸 금액만 2조원에 이른다는 한국은행의 국회 제출 자료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 송금된 사례일 뿐이다.

그런 반면 버진아일랜드로 송금했다고 국세청에 보고된 기업 사례는 없다고도 하니 만약 한국기업 혹은 재벌들이 버진아일랜드에 보낸 자금이 있다면 불법적인 조세회피 목적의 자금 유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재산도피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던 박정희 정권에서도 박정희의 비자금이 스위스비밀계좌에 보관됐다는 소문이 70년대에 꽤 퍼져 있었다. 아직도 국내에서 확인된 내용은 없지만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미 의회 청문회에서는 해당 계좌의 번호 일부가 밝혀지기도 했다니 근거가 전혀 없는 얘기인지는 의아하다.

지난 대선때는 재미교포 언론인 안치용씨가 자신의 탐사보도 블로그에 관련 사실을 길게 늘어놓으며 상속자의 한사람인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확인해보라고 요구했다지만 묵살됐다. 비밀계좌 관리인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당사자가 숨질때까지 침묵했으니 그를 통해 진실을 알 도리는 영영 없어졌다. 잠시 돌다 사라진 소문으로는 김형욱 죽음의 가장 큰 이유가 비밀계좌를 발설한 것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최근에는 재정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의 국왕이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고 해서 말거리가 되고 있다는 외신도 나왔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많은 독재자들이 스위스를 통해 재산을 빼돌렸다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테러 대응 차원에서 스위스 비밀계좌의 철옹성이 가끔씩 열리면서 불법자금 혹은 비자금들이 스위스 대신 새롭게 부상된 조세피난처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버진아일랜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는 스위스 대신 버진아일랜드가 자주 거론되곤 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부터 여러 기업의 페이퍼컴퍼니까지 소문만 무성했지 실체가 확인된 경우는 아직 없었다.

이번 ICIJ 발표도 아직 구체적 명단발표에는 이르지 못했다. 조세회피 등 사회적 범죄와 관련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ICIJ의 입장도 있고 파트너로 조사에 참여할 국내 언론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확인이 덜 된 까닭이기도 하다.

증세 없이 확충될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새로운 세원 발굴에 힘을 쏟고 있는 국세청이 귀가 번쩍 뜨여 명단 확보에 나섰다는데 ICIJ의 방침이 정부기관에는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아직 소득이 없는 듯하다.

현재 한국인은 70명 정도로 확인됐지만 ICIJ가 확보한 자료가 한국 것만 있는 게 아닌데다 조세회피 등 불법적 송금이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연내 발표가 가능할지도 현재로서는 미지수인 모양이다. 게다가 이 자료가 입수되고도 발표할 정도의 기초적인 조사를 하는 데에만 2년 가까이 걸렸다니 최근 자료는 확보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국세청이 애달프다 해도 실효성 있는 자료를 얻기는 수월찮아 보인다.

뉴욕의 본부에서 일하는 기자는 단지 4명뿐이고 각국의 현지 조사는 각국의 회원 언론사가 맡는 시스템인데다 내용 자체가 확인 취재를 하기에 쉽지 않은 내용들이어서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한국은 회원 언론사가 없는데다 국내 언론환경에 대한 불신도 꽤 있는 것으로 보여 이번 사안에 대한 국내 파트너를 선정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언론사 찾기가 힘든게 현재 한국 언론의 현실이니까.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