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시장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시장이 전부가 아니다
  • 홍승희
  • 승인 200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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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또 그 때문에 원자력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북한에 핵포기 선언만 하면 남한의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표가 나왔다.

해방 정국에서 일방적으로 북쪽이 남쪽으로 공급되던 송전선을 끊어버리면서 남북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내기에 돌입했던 역사적 경험을 개인적으로도 체험한 세대들에게는 참으로 복잡한 감회에 젖게 만드는 일대 사건이다.

받아들이는 이들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당한 쪽이었던 우리가 먼저 손내미는 당당한 한판승으로 비쳐질 것이고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왜 먼저 자꾸 퍼주기만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북 지원만 얘기되면 ‘퍼주기’라고 비난하던 한나라당 조차 이번 제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등 청신호가 켜졌다.

자신들이 먼저 송전선을 끊어 남측에 심대한 타격들 줬던 북한 입장에서는 또다른 소회를 가질 만 하다. 똑같이 당할 때의 그 혼란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적잖다고 한다. 북한 쪽에서 아직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정도의 반응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들의 망설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분위기로 봐서 전망은 밝아 보인다.

북측의 우려에 대해 남한 정부는 전력 통제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골탕먹이기식 단전을 염려 말라는 배려다.

미국 역시 표면상으로는 일단 이번 남한 정부 발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상 미국은 그동안 목타는 사람 앞에 물병들고 서서 약올리 듯 “무조건 항복하면 획기적인 제안을 하겠다”는 식의 겉도는 제안만 해왔다. 그러면서 남한쪽이 그같은 미국의 전략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을까봐 계속 사인을 보내곤 했다.

북한 또한 이제까지 미국의 안전보장이 없이는 어떤 대화도 무용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개성공단 등 경제문제에 관해서는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른 민족교류로만 의미를 못박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포기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했다.

중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 동북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골몰했다면 일본은 미국의 힘에 기댄 채 작은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비유가 지나칠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습을 한토막 만평처럼 단순화시켜 보자면 뒷골목에서 건달이 반항하는 꼬마를 협박하는 데 건달 똘마니가 더 설치고 그 옆에선 구경꾼이 훈수를 두는 모양새와 흡사했다.

그렇다면 이런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대응해 왔을까.

국제사회에서 보자면 편싸움에서 양쪽으로 갈라선 쌍둥이 형제처럼 보일 처지에서 우리는 미국에 손목잡힌 채 일본편, 미국편이라며 일본보다 더 설치고 나서지는 않았을까.

물론 6.25의 처참한 기억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든 세대들에게는 민족 동질성보다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으로 역사 속에서 문제를 보자면 저들이 아프면 나도 같이 아플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꼭 핏줄이니 뭐니 하는 정서적 동질성 때문에 그리 돼야 한다는 것만도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내수 부진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 지목되고 있지만 실상 수출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내수시장이 우리 경제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인 것도 사실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데 따라 내수시장의 뒷받침도 그만큼 커져가야 하는데 일단 규모면에서부터 너무 작다.

그리고 우리는 영토도, 인구도 모두 작은 나라다. 남북이 통일된다고 갑자기 대국이 될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미래의 시장도 커지고 한단계 도약할 새로운 발판도 든든해질 것이다. 당장 가난한 북한만을 보지 말고 통일 후 커진 시장을 바라 본다면 판단이 바뀔 수 있다.

그것 아니라도 남북관계 안정만으로도 한국 투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리적 안정감은 또 얼마나 커지겠는가.

심심찮게 국가신인도가 오르내리는 최대 변수로 역시 한반도 정세가 들먹여지곤 하지 않았나. 그걸 비용으로 환산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게다.

통일비용을 과장하는 이들에게선 빈약한 우리의 역사 교육 현실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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