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잃은 사회의 비극
전망 잃은 사회의 비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종종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혼신의 힘을 다 한다고 하듯 무릇 인간의 삶에서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내 온 힘을 다하는 순간이 개인적으로도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이런 느낌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반기업 정서가 문제라고 불평하는 소리들이 종종 들리지만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반기업 정서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경제 시절, 온갖 특혜를 주어 성장시킨 기업이나 기업가들이 사회적 실망감을 안겨준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럴 때 기업에 사회는 실망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기업이 사회적 실망을 안겨주는 사례는 그간 주로 기업과 기업인들의 도덕성에서 유래됐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기업에 실망스러운 현상은 스스로 미래의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 무기력함으로 인해 그 가진 사회적 비중에 비해 공헌도가 낮아지는 데서 찾아진다.

용산개발 사업의 디폴트, 그리고 이어질 후폭풍 걱정도 제대로 된 경제 전망 없이 밀어붙이다 벌어진 참사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고 40조원 가까운 현금을 끌어안고도 투자처를 못 찾고 있다는 삼성그룹을 보는 것도 가슴 답답하다.

그 중 심란한 용산개발 사업 디폴트 문제는 정치적 성과주의도 한몫을 했던 일인지라 단순히 참여 기업만의 책임만 물어서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멋대로 선 죽죽 그어가며 개발계획 세워놓으면 그 선 안에 사는 개인들의 삶은 어디로 가든 걱정하지 않던 개발경제 시절의 미망에 젖어 벌인 용산개발 사업.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고 요란스레 착수한 이 사업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 그 가운데서도 유독 심하게 앓고 있는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초하고 있다.

주변에서 그동안에도 간간이 보아왔다. 도로 확장공사 선을 죽 그어놓고 10년, 20년씩 방치하다가 시한 지나 흐지부지되면 그 선 안에 들어있던 집들은 그 긴 세월동안 재산권 행사도 못한 채 언제 계획이 실행될 지만을 맥 놓고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계획이 취소된다고 어떤 보상은 고사하고 정책 당국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제대로 듣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담당 공무원들은 그동안 무수히 바뀌어 갔을 테니 그 누구에게도 책임조차 물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용산개발 사업은 사업이 포기되면 그 후 잇단 소송이 제기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몇 년씩 재산권 행사는 고사하고 집수리 한번 제대로 못한 채 스산한 동네에서 살거나 앞으로 나올 보상금을 믿고 돈 빌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경우나 모두가 어지간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참 다행이겠다. 당장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들 입장에서국민연금이 용산개발 사업 디폴트로 인해 1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떠안는다는 소식에는 그저 마음이 불편할 뿐일지라도.

정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책임감 낮은 집단으로 싸잡아 체념하는 문화가 우리 안에 있었다. 자기 지갑은 열심히 챙기면서도 정부 재산은 매우 소홀히 다룬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 뇌리 속에 자리잡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라면 적어도 자기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글로벌을 외치며 자신들의 경제이념을 주입시키던 화려한 재벌 기업이 회사내에서 현금을 몇 십조 원씩 그냥 놀리며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때가 굴러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짜증이 난다. 강태공이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던 시절에는 그저 왕에게 발탁되는 일 말고 다른 할 일이 없던 게 귀족들의 일반적인 삶이었으니 그렇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

삼성전자 1개 회사에만 37조 이상의 현금이 쌓여 있다는 삼성그룹이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새 정부로부터의 어떤 혜택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고 세계 경제가 좀 더 살아나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은 경영을 모르는 필자 같은 소인들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술 세계에서는 표준을 누가 먼저 세우는지가 특허 몇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아는데 그걸 위한 투자라도 우선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지 절로 고개가 기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