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사' 중언부언 회고
'대구참사' 중언부언 회고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3.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인과 일본인, 한국인이 집을 짓는다. 땅 평수는 같다. 누가 제일 훌륭한 집을 지을까.

훌륭하다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는 철학적인 문제니 일단 제껴 두자. 어차피 현대 주류경제학에서는 수치화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괄호밖이니까.

당연히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집을 가장 멋지게 지을 것이다. 천만원으로 지은 집, 10억으로 지은 집, 빚내서 지은 집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술력, 창의력, 민족성은 그 다음 문제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검찰사태, SK사태에 묻히긴 했어도 여전히 유족들은 수십일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검찰은 구속할 사람을 색출하느라 바쁘고 언론은 안전불감증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서 아니나 다를까 자주 선진국 사례들을 들먹인다.

독일은 알루미늄 차체에, 스프링쿨러 장치, 제연 시설이 모두 설치돼 있다고 하고, 일본은 불연재 사용이 의무화된 데다 정전시에도 비상전력이 공급된단다. 그리고 미국은 거기에다 무장 경찰들이 항시 지하철에 동승까지 한단다.

물론 해외사례를 살펴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귀감을 삼아 재연을 방지하려면 비교할 대상도 있어야 하고 기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항시 느끼는 것이 부럼움이 주를 이루고 그에 따르는 자기비하는 즐비한 데 이를 넘어서는 시각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얼마나 최적의 상황을 도출하고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번 자문해 보자. 우리 사회는 과연 역마다 스프링쿨러를 달만큼 풍족한 사회인가. 역마다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성숙한 사회인가.

감히 말하건대 우리 언론들은 스프링쿨러라니 돈이 남아도느냐...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스프링쿨러... 지하철공사 예산낭비 심각이라고 지껄이고도 남을 위인들이다. 한 열차에 두 명의 기관사가 꼭 타야 하는가를 의심하지 않는 사용자를 가질 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하지 못했다. 스프링쿨러가 잘 작동하는지 점검할 인력에 대해 돈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는 여유롭지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최대보다는 최선이요 최적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나름의 룰을 지켜가며 그나마 안전하고 쾌적하게 잘 운행돼 왔던 것이 한국의 지하철이다. 뉴욕 지하철처럼 언제 총에 맞을지 몰라, 언제 지갑을 털리고 폭행당할지 몰라 가슴졸이며 타는 지하철이 아니다. 철마다 터지는 대형사고에도 망설임 없이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사람들이 타는 지하철인 것이다.

최첨단 지하철보다 이런 특성이 살아 숨쉬는 지하철이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외부의 물리적 규제보다 내부의 상식으로 질서를 유지시켜 왔다. 많이 무너지긴 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그런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내재가치다.

영국의 예가 떠오른다. 안전운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영국 지하철이 방만한 운영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다. 그리고는 민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만약 팍스 브리태니카 시절의 영국이었다면 굳이 그 길로 접어들 필요가 있었을까. 미국은 왜 세계가 말리는 전쟁을 하려고 난리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내수용, 수출용 다른 지하철을 만들고 있는가.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