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과 경제민주화
환율전쟁과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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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예상됐던 환율 위기가 올해 들어서자마자 현실적 위협으로 닥쳐왔다. 재정절벽을 회피하려 무차별적으로 달러를 살포하는 미국, 집권 전에 이미 선거기간에서부터 통화팽창을 예고한 아베의 일본, 회원국들의 잇단 재정위기를 겪으며 무제한 양적완화로 상황 돌파를 시도하는 유로 존 등 거의 전 세계가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팽창 정책을 펴고 있다.

그 와중에 원화는 홀로 청청하다. 덕분에 원`달러 환율이 연초 들어서자마자 1070원까지 떨어졌고 수출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어 일견 세계적인 환율전쟁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듯 보이지만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언제든 전쟁에 돌입할 여력이 있다. 중국 외에도 다른 신흥국들까지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유동성을 늘려 가면 환율전쟁은 가히 세계대전이라 부를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전 세계적 상황 속에서 수출 위주로만 운영해오던 경제 체질상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는데, 문제는 이런 상황을 관리할만한 정책적 수단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지식경제부는 올해 한국 수출을 매우 낙관하고 있다.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을 올릴 것이라며.
그러나 지난해에 이미 물가를 외면하면서까지 수출실적을 올리는데 열중했던 한국경제는 올해 세계 각국의 통화팽창에 똑같은 방식으로 맞서다가는 가뜩이나 세계최대의 가계부채규모라는 기록에 물가폭등으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를 더해 수습불능으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현재의 환율 폭등은 연내 원`달러 환율 1천원 선 붕괴 위험까지 우려하는 소리들이 나오는 판이다. 한국 정부가 이를 관리할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소리도 뒤따른다.
이미 환율시장이 활짝 열린 상황에서 환율 폭등이 지속될 경우 주력 수출품목인 IT와 자동차 등의 수출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 것인지 전망하기도 두렵다. 물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표기업들이야 수입부품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도 있겠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그들 기업의 하청업체들이 더 큰 고통에 내몰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경영압박을 하청기업에 분산시키려는 속성은 위기감이 클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과연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인들 대기업들의 위기를 무시하고 공정거래의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더욱이 집권 여당의 오랜 속성으로 미뤄볼 때 경제민주화보다는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하다 세월만 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재벌들도, 또 친재벌 언론들도 정부를 그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 뻔하고.
1, 2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부는 추진력을 잃을 테고 재벌기업들은 자본의 관성을 좇아 상생보다는 독식의 궤도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런 관성을 보며 자란 탓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최고 권력은 재벌에게 있다고 여긴단다. 모바일 설문조사 전문기관인 두잇서베이가 10대 이상 성인남며 4천5백9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의 조사결과 가장 많은 응답이 재벌(32.0%)이고 그 다음이 국회의원 등 정치인(23.2%)란다. 대통령은 15.9%로 3위에 랭크됐다. 그 뒤를 국민, 언론, 검찰의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20, 30대는 ‘재벌’을 최고 권력으로 응답한 숫자가 평균보다 더 많았다. 대통령을 최고 권력으로 본 50대 이상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어떻든 그런 재벌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힘은 집권 초기에 반짝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2012년에 당해년도 수출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2013년에 쓸 수 있는 총알을 거의 소진시켜버려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민주당은 50대를 잘못 읽어 선거에 졌다지만 한국의 여러 경제주체들은 대다수 서민들의 실태에 정말 무지한 게 아닌가 싶다. 쓸 돈이 바닥나 빚에 기대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희망을 갖기에도 무력감이 너무 커져버린 서민들을 앞에 두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쯤으로만 평가한다.
그런 어긋난 진단이 한국경제를 속으로부터 곯게 만든다. 양극화는 드러난 부분이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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