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시대 여성은 행복했을까
여왕의 시대 여성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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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선 판에서는 여성성이 새삼스레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유력 대통령후보로 여성이 떠오른 게 처음이어서 초기에 잠깐 관심사가 되긴 했지만 그 뿐이더니 박근혜 후보 자신이 여성대통령론을 들고 나오면서 과연 박근혜 후보가 ‘여성’후보인가를 놓고 설왕설래다.

우리말로는 똑같은 성(性)이지만 근래 세계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통상적으로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구분한다. 이는 여성운동의 목표가 사회적인 성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행동하자는 식의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주창하던 과격한 주장은 7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점차 뒤로 밀려나고 각기 다르게 태어난 여성과 남성, 나아가 모든 개인의 다른 점을 차별하는 사회 구조를 바꿔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똑같은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처한 환경에 따라 남성중심 사회에서 보호받으며 클 수도 있고 심각한 차별 속에 고통 받으며 살 수도 있다. 문제는 대다수 여성들이 많든 적든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으므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은 물론 관습으로부터 남녀 모두가 해방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여성 개개인의 행복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 전반의 발전을 이룩하자는 목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후보의 여성성 논란이 사회의 일반적 상식어로부터 벗어난 단어 사용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학술용어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대중을 상대하는 미디어에서 발언하기에는 매우 거북한 단어를 여성 후보에게 적용함으로써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다수 여성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논란과는 별개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면 여성의 삶은 더 나아질까.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는 것이 한국의 여성지위가 향상됐음을 반영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여성이 여왕도 되고 대통령도 나왔고 수상도 나왔지만 그들 시대에 그들 나라들 속에서 여성의 삶이 더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그들은 여성의 대표가 아니라 국가의 대표인 여성이 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전 세계 여성대통령, 여성수상 가운데 유럽권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아무개의 딸, 아무개의 부인으로 강력한 남성정치인 가족의 후광을 업고 등장했다. 그럴 경우 이슬람권에서도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로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나아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기반으로 정계 입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의 경우는 어느 쪽인가.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아니어도 지금처럼 정치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아버지 시대의 이념에 매달리고 어머니의 외양을 답습한 채 여성대통령을 말하는 것이 많은 여성들에게 미덥지 않은 이유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성대통령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 증가, 성 평등 증대의 결과일 수는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초등학교에서부터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남자와 여자 각각으로 뽑아서 아예 여학생들의 꿈은 거기까지라고 못 박았었다. 당시 그래도 학교가 가장 성 평등 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학교에서 그런 차별은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런 벽이 아주 단단하지는 않아도 유리벽 혹은 비닐 막처럼 쳐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지식인 사회, 중산층 사회에도 벽은 존재하지만 그 보다는 사회 기저로 내려갈수록 그 벽이 아직도 꽤 단단해 보인다.

그런 계층간 벽의 차이는 가정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뚜렷해 보인다. 재벌가가 됐든 중산층이 됐든 아직 여성들은 차별을 느끼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돈벌이를 선택 아닌 필수로 나서야 하는 처지에서도 집안일과 육아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진 저소득층 여성들의 삶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하다.

그런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대변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여성대통령을 얘기할 수 있고 여성들도 흔쾌히 대표의 자격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여성대통령론은 아직 너무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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