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경쟁의 뒤끝
양적완화 경쟁의 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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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세계 도처에서 경쟁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서는 추세다.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단행했고 일본과 중국이 뒤따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유럽은 스페인 같은 재정위기 회원국들의 태도에 밀려 양적완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서는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경기 침체의 장기화 전망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위축의 위험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유럽발 재정위기가 닥치며 세계 경제가 치명타를 맞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두운 경제 전망에 더해 정치적으로도 양적완화의 유혹은 강렬하다. 이미 양적완화에 나섰거나 고려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체로 최고지도자의 교체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의 인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저들의 속사정이 훤히 보인다.

이런 나라들이 신용경색 해소를 구실로 양적완화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재정확대 방안을 모색한다. 결국 속도나 모양새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돈을 찍어대는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전반적으로 경제적 이유도 충분히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과도하게 돈이 늘어나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위험한 게임에 모두가 빠져드는 모습이다.

정치가 경제를 휘둘러 위기를 키우는 경험을 한국은 이미 15년 전에 경험했다. 위기를 빨리 공개하고 대처했더라면 상황은 한결 완화됐을 테지만 대선을 앞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가 국가부도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서야 간신히 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적어도 30대 중반 이상 국민이라면 당시의 어려움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또다시 대선국면에서 통화관리의 방향을 놓고 유혹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을 두고 말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가지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혹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견해들이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를 두고 그 효과에 비판이 적잖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런 반응의 하나다.

문제는 이 경쟁적인 양적완화 추세가 향후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다. 거대국가 혹은 유로존 같은 곳에서 통화 발행량을 늘린다면 일차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가져올 가장 큰 폐단은 부의 편중을 심화시킨다는 점인데 이게 일개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 된다면 그 때는 개인 차원의 부의 편중을 넘어 국가 차원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갈 것이라는 점이다. 돈은 생리상 돈을 따라 돌 수밖에 없고 그 속도가 빠를수록 양극화의 속도 또한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물자의 이동을 통한 수출경쟁의 단계를 넘어 통화전쟁으로 치달아 갈 것이다. 미국의 거듭된 양적완화는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달러 보유고가 많은 나라일수록 손해를 보게 만든다.

달러 보유가 많은 중국과 일본이 양적완화를 고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자국 경제성장 속도의 둔화를 막으려는 것이겠다. 결국 환율 수평을 이루어 수출 경쟁력을 유지시키려는 의도다. 그러나 보유 달러의 가치를 보존시키는 것도 당장의 문제 가운데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쟁적인 양적완화 추세가 각국이 바라는 바대로 순수하게 경제성장 동력을 확대해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의 소비여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보다는 금융의 거품만을 더 늘려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미국 정부는 3차 양적완화를 단행했지만 돈은 은행에서 머물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온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겁을 먹고 있어서 돈이 돌지 못하고 경기부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 전망은 어둡고 실업률도 속시원하게 줄어들지 못하니 은행들로서는 소심하게 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돈은 금융권 내에서만 돌며 거품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 이런 세계적인 전망 앞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돈을 쓸 수 있는 개인은 1~2% 뿐이고 중산층도 지갑을 닫기 시작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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